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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입과 자율이 공존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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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09. 3. 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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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의심하는 당신 떠나라, 폴라니의 세계로 [2009.03.27 제753호]
고3 교실 같은 회사에서 세계 경제를 비관하는 애널리스트와 무덤에서 불려나온 폴라니의 대화
▣ 안수찬 정인환
» 시장을 의심하는 당신 떠나라, 폴라니의 세계로/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신자유주의 30년, 자본주의 100년의 기틀이 거대한 전환의 초입에 들어섰다. 인류 문명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창간 15주년을 맞은 <한겨레21>은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로부터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우선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폴라니의 가상 대화를 꾸몄다. 이어 폴라니의 삶과 사상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21세기적 함의를 짚는 좌담도 마련했다. 그와 함께 개척할 우리의 미래도 그려보았다.

이제 시장과 자본은 더 이상 인간이 기댈 것이 못 된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때가 왔다.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용기 있게 펼칠 때가 왔다.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말하자면, 칼 폴라니가 새 시대의 출발점이다. 편집자

애널리스트: 출근하면 회의실부터 가요. 갈색 원탁이 있고 붉은 의자가 있고 백색 칠판이 있어요. 아침 7시면 회의가 시작돼요. 그전에 담배부터 피워요. 단 몇 초나마 우울과 긴장을 눅이지요. 공식적으로야 서울 여의도 모든 건물은 금연 빌딩이에요. 그래도 담배마저 못 피우게 하면 사달이 날 거예요. 스트레스가 워낙 많거든요. 애꿎은 청소부 아줌마만 꽁초 치우느라 욕을 봐요.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책상 위에 컴퓨터 모니터 두 대가 있어요. 하나로는 지난밤 미국 증시를 살피고, 다른 하나로는 뉴스를 봐요. 비관과 낙관 사이를 자맥질하죠. 최근에 눈여겨봐둔 기사들이 있어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2008년 10월 <뉴스위크> 기사예요. “서구식 자본주의 모델이 실패했다.”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2009년 1·2월호죠. 국제통화기금(IMF)은 3월6일 정책보고서에서 “시장만능주의의 가정이 실패했다”고 했어요. “앞으로는 과거 30년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3월9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죠. “자유방임주의 시대는 끝났다.” 3월16일 <가디언>에 실린 브라운 영국 총리 인터뷰예요.

저는 예전과 다름없이 매주 보고서를 내요. 불길한 예감은 절대로 실현될 리 없다고 꽁꽁 힘주어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죠. 그런 기사들 가운데 당신을 만났어요. 1년 전이었지요. 지난해 3월 <뉴욕타임스>에 브래드퍼드 드롱 버클리대 교수의 경제 칼럼이 실렸어요. 그 칼럼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폴라니의 말처럼, 시장은 인간의 교류와 대화와 상호 의존이라는 오래된 토대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토대는 이미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사람들은 시장의 종말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몇몇은 당신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어요. 제가 발 딛고선 이 땅,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경고했다는 칼 폴라니,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폴라니: 나는 한국 신문 이야기를 하지. 2008년 10월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악마의 맷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어. “시장경제의 재앙은 경제를 다시 사회적 통제 안에 가두어둠으로써만 피할 수 있다고 칼 폴라니는 보았다.” 경제평론가 정태인이 2008년 12월 <경향신문>에 ‘대전환’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지.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차례로 30년간을 지배했고 이제는 폴라니의 시대다.” <중앙일보>는 2008년 9~10월에 세 차례에 걸쳐 나를 인용하는 칼럼을 실었어.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윤영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등이 내 개념과 분석을 빌려 “월스트리트의 붕괴” “시장만능의 신화”를 비판했어. 2009년 2월 <한겨레> 시민포럼에서 우석훈 연세대 강사는 “이제 폴라니의 시대가 온다”고 발표했어.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칼 폴라니’를 직접 인용한 칼럼은 중앙일간지를 통틀어 두세 건에 불과해. 그런데 2008년 하반기부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나를 갑자기 들먹이기 시작한 거야. 내 책 <거대한 변형>이 5월에 새로 완역돼 나온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연세대 사회학과에서는 나를 주제로 잡은 공개 연쇄 강좌도 열리고 있다는군. 오히려 내가 물어야지. 1964년에 죽은 나를 무덤에서 되살리는 당신들, 도대체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거야?

» 시대별 패러다임과 폴라니의 비판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폴라니는 잊혀진 이름이었어. 나는 케인스·하이에크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 그들은 20세기를 차례로 지배했어. 학계에 그들의 제자가 생겼고, 미국과 영국의 정부가 움직였지. 케인스는 루스벨트에게, 하이에크는 레이건에게 영감을 줬어. 그런 대접, 나는 못 받았어. 유럽에서조차 내 이론은 경제학 커리큘럼에서 곧잘 빠졌지.

70년대 이후 미국 대학에서는 케인스마저 공부하지 않는다지? 미국 유학파가 지배하는 한국 학계에 칼 폴라니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야.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비미국인’의 10%가 한국인이었어. 결국 한국 경제학자들의 절대다수는 하이에크의 자식들이야. 지금 하이에크 세계의 붕괴 앞에서 그들은 당혹스럽겠지. 그래도 폴라니의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스의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하이에크의 <법·입법·자유>에 버금가는 내 주저는 <거대한 변형>이야. 1944년에 처음 출간됐지. 이게 한국에 번역된 게 1991년이야. 일어판을 번역한 것인데 그나마 절판됐다더군. 프랑스에서도 1983년에야 번역됐어. 국제학회인 ‘칼 폴라니 정치경제학회’가 만들어진 것이 1987년이야. 이후 사회학·정치학·인류학 분야에서 나를 인용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생겼지.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도 내 영향을 받았어.

그래, 나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조금씩 부활한 거야. 이유가 있어. 나는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를 차례로 베어버렸거든. 그들의 이상과 프로그램이 현실에서 차례로 파국을 맞기 전까지는 내 자리가 없었던 거야.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관념을 나는 끝까지 부정했어. 반면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만나지. 그럼 경제결정론의 칼자루를 누구한테 쥐어줄까? 노동자? 경제관료? 금융자본가? 그런 식의 접근을 나는 반대해. 그들의 후예가 학계를 지배하는 곳에서 나는 경제학자 축에도 못 끼었던 거지.

‘폴라니의 아이들’은 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자라고 있어. 유럽에서는 내 접근법을 기초로 하는 ‘경제인류학’이 독립 학과로 만들어지고 있어. 미국에서도 기존 경제학과 별개의 ‘사회경제학’을 공부하는 학과를 세우려는 노력이 생겨났지. 결정적인 것은 2006년 의회를 장악한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체제의 대안으로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을 끌어온 일이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라는 학자의 영향을 받아 그런 논의가 시작됐다는데, 경제에 ‘공정’의 개념을 들여온 게 바로 나거든. 공정·호혜에 대한 폴라니의 이론이 바야흐로 세계 체제에 접목되는 순간이 시작된 거야. 스티글리츠는 2001년 <거대한 변형> 영문판의 서문도 썼는데, “자기 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에 특별한 결함이 있다는 폴라니의 생각은 아주 최근에 와서야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어.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단순해. ‘시장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러니 시장을 가만 놔둬라.’ 거짓말이야. 오히려 시장은 인간을 옥죄지. 실현되지 않을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지. 만약 네가 폴라니에 대해 궁금해지고 있다면, 그건 시장주의의 주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야. 환영해. 폴라니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 2009년 2월17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폭락에 절망하는 한 직원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 사진 REUTERS/ BRENDAN MCDERMID
애널리스트: 우리 사무실은 고3 교실 같아요. 몇 주 뒤면 주요 경제 일간지에 ‘랭킹’이 발표되거든요. 업종별 애널리스트 순위가 매겨져요. 펀드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들을 평가해요. 인간이라는 상품에 공개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거죠. 6개월에 한 번씩 있어요. 피가 말라요. 순위에 따라 연봉이 조정돼요. 공개되는 랭킹은 분야별로 5명 또는 10명인데, 요즘은 주식시장이 좋지 않으니까 10등 안에 못 들면 쫓겨날 각오 해야 돼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어요. 흔적이 없어요. 달팽이들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져요. 여의도를 아예 떠나는 것 같아요.

점심 때 밥 먹으면 병신이래요. 제 담당 업종에는 애널리스트가 30여 명 정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회의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도 못 먹고 시장 분석하느라 점심도 거르겠죠. 대신 저녁에는 펀드매니저를 만나 ‘접대’를 하겠죠. 룸살롱도 가고 골프도 칠 거예요. 저는… 그냥 하루 종일 담배만 피워요. ‘진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1년에 2억~3억원씩 벌어요. 그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연봉을 받으려면 랭킹에 들어야죠. 그 랭킹은 펀드매니저가 매기는 거고요.

“ㅇ사 2008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2% 증가했습니다.” “이유가 뭔가.” “4분기가 전통적으로 이 업종 성수기입니다.” “보고서에 그렇게 쓸 건가?” “아닙니다.” “그럼 이유가 뭔가.” “저가 신상품 ‘ㅋ’에 대한 구매가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틀렸어. 경쟁사들도 저가 상품은 내놓았잖아. 이유가 뭔가.” “….” “좀 돌아다녀. 사람들도 만나고. 이유를 알아내란 말이야. 다음, 반도체 부문 브리핑해.”

보세요. 회의 시간만 되면 저래요. 다들 ‘논거’를 대지만 실은 ‘직관’이죠. 솔직히 경제가 끝장나버렸다는 식으로 분석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분석을 해서는 ‘랭킹’에 들어갈 수 없어요. 어머니는 종로에서 구멍가게를 하세요. 그렇게 제 뒷바라지를 하셨지요. 빈궁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 않아요. 애널리스트니까 돈 많이 벌겠다고 주변에서 부러워하지만, 그게 다 암세포를 만드는 일이에요. 그동안 번 돈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올가을로 예정된 결혼 준비를 하느라 다 썼어요. 그래봐야 신접살림 차릴 전세 아파트 값도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늙으시면 병원비 부담도 적지 않겠죠. 장래를 계획하는 일이 모두 목돈을 마련하는 일로 연결돼요.

제가 절대로 시장 보고서에 쓰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대로 가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거예요. 지금 세계 경제는 벼랑에 몰렸어요. 그냥 가면 빠져 죽을 테니까 일단 핸들은 꺾어야겠지요. 그게 돈을 찍어 뿌리는 거예요. 체제 붕괴 조짐이죠. 뿌린 돈은 결국 인플레를 일으킬 거예요. 그러면 정규직·비정규직, 고액·저액 가리지 않고 모든 급여 생활자는 거리로 나앉을 거예요. 이건 저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는 비밀이에요.

가끔 대학 때 생각이 나요. 미국 유학 다녀온 교수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요소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리고 덧붙였지요. “그런데 시장이란 게 사실은 ‘불가지’의 영역이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의 법칙을 설파하면서 그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구시렁대는 학문을 제가 공부했던 거죠. 그 교수들도 비밀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비관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 억지로 낙관했던 거 아닐까요. 그들도 박사 학위 받으려고 미국 교수들을 접대했던 거 아닐까요.

폴라니: 마르크스는 당신의 계급을 저주했겠지. 케인스는 당신 같은 금융분석가를 휘하에 부리려 했을 테고. 하이에크는 당신의 역할을 찬양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행복하지 않지? 당신의 노동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 이 경쟁에서 언제 밀려날지 두렵다는 느낌…. 인간의 그런 불안과 공포까지도 위로해주는 것이 진짜 경제학이야.

“시장을 사회에 착근시켜라.” 내 이론의 핵심이야. 어떤 경우에도 ‘상품화’시키면 안 될 것이 세 가지 있어. 노동·자연·화폐야. 재화를 교환하는 시장은 필요해. 그렇다 해도 노동·자연·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방임’으로 거래하면 곧바로 재앙이 시작되는 거야.

노동은 인간의 다른 이름이야. 인간을 사고판다고? 인간은 상품 가치와 경제적 이익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야. 토지를 비롯한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시장에서 버려지거나 낭비되면 복구할 수도 없어.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야. 구매력은 개인이 뜻한 대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니지. 오히려 국가 또는 세계 금융 체제에서 ‘생겨나는’ 것이야. 인간·자연을 상품화한 뒤에 화폐까지 사고팔 수 있다는 환상을 심은 게 바로 ‘시장 자유’, 즉 ‘자기 조정 시장’의 결정적 폐해야.

노동·자연·화폐의 상품화로 피해받는 건 인류 문명 전체야. 노동자·농민은 물론 생산기업까지도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신화의 피해자야. 금융시장에서 화폐가 거래되는 방식 때문에 생산기업은 주기적으로 파산될 수밖에 없어. 그 기업이 만들어내는 재화가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는 일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모두 항상적인 빈곤과 불안에 시달리는 거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내버려만 두면 인류의 자유가 증대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완전히 거짓말이야.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일이 거듭되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국가의 개입이 해결책인 것은 아니야.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국가 대신 ‘사회의 개입’을 내세우는 셈이야. 그런 점에서 나는 사회주의나 파시즘을 싫어했지. 시장을 사회로부터 떼내어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떼내어 절대화하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었어. 두 방식 모두 인간 사회를 황폐화하는 것은 똑같잖아.

원래부터 경제는 인간 사회의 한 부분이야. 마치 정치와 문화가 사회의 한 부분인 것처럼. 그런데 왜 유독 경제만 정치·문화와 달리 사회적 합의 구조에서 예외가 되어야 하지? 경제는 사회 구성원의 소통·도움·합의 등에 의해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어. 요즘 말로는 ‘시민사회’를 생각하면 되겠군. 시민사회에는 노동자, 농민, 생산기업가 등이 모두 포함되지. 이들의 경제 문제를 ‘사회적으로’ 푸는 세 가지 방식이 있어. 공동체·협동조합을 통한 상호부조, 시장을 통한 재화의 교환, 국가를 통한 사회적 서비스 제공 등이야. 이런 요소의 공존이 ‘폴라니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 뼈대지.

» 2008년 9월27일, 미국 의회가 금융기관에 대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집행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모여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 REUTERS/ SHANNON STAPLETON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매일 여의도 금융가에 쏟아지는 수많은 분석과 지혜의 다만 일부라도 다양한 사회 요소의 공존과 소통을 위해 할애한다면 어떨까?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퇴근하는 당신의 노동 가운데 일부를 공존·호혜의 질서를 만드는 데 쓴다면 어떨까?

애널리스트: 학창 시절, 대학 교지 편집실에 있었어요. 편집장까지 했지요. 마르크스를 공부했어요. 군대 갔다와서 복학하니까 소비에트는 붕괴했고 마르크스의 시대도 끝나고 있었어요. 편리한 머리들이 잊어버려서 그렇지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고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재경부 공무원이 되고 싶었죠. 국가권력을 빌려 부자들의 돈을 거둬들이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 돈을 쓰고 싶었어요.

수업 시간엔 하이에크를 배웠지만 마음으로는 케인스가 되길 꿈꿨어요. 하이에크는 자유경쟁을 믿었고, 케인스는 정부 개입을 믿었죠. 저는 고시에 합격할 거라고 믿었어요. 무성한 플라타너스 사이로 매미가 찌릉찌릉 우는 여름을 세 번 보낸 뒤에 시험 공부를 접었어요. 2001년 중소기업에 취직해 2천만원 정도 받았어요. 대기업으로 옮겨 그 두 배를 받았죠. 3년 전 증권사로 옮기면서 다시 몸값을 높였어요.

사무실 입구에는 백색 칠판이 있어요. 이름을 적고 시간을 적고 목적지를 적어요. 서로 경쟁을 시키는 거죠. 기업에 찾아가 정보를 구하는 일을 ‘탐방’이라고 해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탐방’할 일이 많죠. 기관투자가에게 전화 걸어서 시장 정보를 직접 브리핑하는 걸 ‘콜 넣는다’고 해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는 콜 넣을 일도 많죠. 하루에 50통씩 콜 넣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회의실 가서 담배를 피워요.

금융이라는 게 원래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 있는 사람을 연결해 생산적인 곳에 쓰이게 하는 장치죠. 그런데 돈이 돈을 따먹는 일이 반복됐죠. 미국은 그런 식으로 돈을 벌었고 신흥국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았죠. 모래 위의 집이었어요. 이제 무너지고 있지요. 저도 거기에 한몫했죠. 그래도 펀드 가입한 임금 생활자들에게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여의도에는 집회가 많이 열려요. 저는 그냥 지나쳐요. 달리 뭘 할 수 있겠어요. ‘월드비전’에 기부금을 내요. 진보신당에 가입해 당비도 낼 생각이에요. 지난 10여 년 동안 제 몸의 세포는 모두 바뀌었어요. 마르크스의 것도, 케인스의 것도 아니지요. 365일 가운데 360일을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래도 가끔 옛날 생각이 나요. 플라타너스 그늘 무성한 벤치에 앉아 내 미래와 사회의 미래를 함께 꿈꾸었던 때가 가끔 기억나요. 칼 폴라니, 당신에게 기대를 걸어도 되는 건가요. 그런 세상을 당신이 품고 있는 건가요.

폴라니: 한국의 학자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는군. “금융경제는 탐욕인데, 폴라니는 탐욕을 경계한다. 최근 금융위기와 관련해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시장에 대한 폴라니의 사회적 접근은 다양한 대안에 대해 풍부한 영감을 준다.”(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주의의 심화를 통한 사회경제의 재조직화의 방향을 제시해준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이에크주의자들이 판치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여러모로 독보적인 학자야. 스스로를 ‘급진적 제도주의 경제학자’라고 부르지. 이 교수는 “폴라니를 새로 읽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어. △성장에 대한 강박을 떨쳐냈다는 점에서 시장주의는 물론 케인스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와 구분된다 △삶의 기본 터전을 파괴하는 시장주의를 비판하면서 협동조합 등 공동체적 연대규범에 주목한다 △산업과 국가를 거부하는 무정부 생태주의와는 달리 돌봄·협력·소통의 질서를 국가·세계 체제 차원으로 확대한다 △시장을 폐기하지 않고 ‘살림살이 경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을 주장한다 등으로 폴라니 사상의 핵심을 설명했어.

한국 사람들은 폴라니를 몰랐지만, 실은 폴라니적인 일을 꽤 벌여놓았어. 노동운동은 모든 협동조합의 기초야. 영농조합이나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것은 생산자 조합으로 발전할 수 있지. 환경운동은 생태적 가치를 확산시켜왔지. 생태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귀농한 사람들도 있잖아. 공동육아나 생협도 ‘살림살이 경제’의 기초가 되지. 희망제작소나 아름다운재단에서 펼치는 사회적 기업 운동, 사회 기부 운동도 마찬가지야. 이들을 종횡으로 엮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은 내가 설파한 ‘토론 민주주의’의 출발이야. 진보정당이 그런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창비그룹에서 주창해온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상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살림살이 경제를 세계 체제 차원으로 확대하는 씨앗이 될 수 있어. 심지어는 공동체적 전통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와 사회 연대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가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지평도 마련할 수 있어.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일궈온 ‘좋은 사회’를 위한 작은 성과를 계속 덧대고 엮어내는 일이야. 이제, 질문을 돌려줄게. 너는 그런 일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니? 파국을 두려워하며 당장의 연봉을 올리는 경쟁에 머리를 파묻는 대신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연대에 나설 자신이 있니? 그런 일을 2009년 한국 사회에서 네가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어도 좋을까? 그런 세상을 정말 네가 품고 있는 걸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출처 : 한겨레21>












복지국가의 형태를 구경조차 못해본 나라에서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이겠으나,
국가개입과 시장자율의 공존을 고뇌하는 이들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
(**)사회공동체 역시 타율과 자율이 어떻게든 융화되는 조건들이 있을텐데,
인간이 변수인지라 참 어렵다, 어려워.
강수돌 이장님 같은 분들의 실험에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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