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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08. 7. 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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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시시각각] 기대 상실의 시대 [중앙일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1990년대 미국 경제를 두고 ‘기대 체감의 시대(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라고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데다 장래마저 암울했던 당시 미국 경제를 빗댄 말이다. 어딜 둘러봐도 기댈 구석을 찾지 못하던 미국민들이 점차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고 체념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2008년 7월 한국 경제가 딱 그 모양이다. 아니 경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온통 기대 체감의 시대에 들어선 느낌이다. 체감이란 말은 오히려 과분할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잦아든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확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기대 체감이 아니라 기대 상실의 시대다.

국민적 기대를 한몸에 받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불과 4개월 만에 그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쇠고기 파동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엇박자 경제정책으로 스스로 무능을 입증했다. 안에서 깨진 쪽박은 밖에서도 줄줄 샜다.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실용외교는 북한은 물론 한반도 주변 4강으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한·미동맹의 재건은 희미해졌고, 중국·일본과의 정상외교로 얻은 것이라곤 중국의 냉대와 일본의 억지뿐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안팎의 지지를 모두 잃은 채 고립무원의 길을 걷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가 대선 승리 후에 한 것이라고는 전봇대 두 개 뽑은 것과 내부의 권력 다툼밖에 없다는 시중의 우스갯소리가 빈말이 아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된 권력 내부의 자리 다툼은 부실 인사로 이어졌고 허술한 인사는 무능한 정부를 낳았다. 무능한 정부는 이제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대선에 승리했을 바로 그때 타고 온 뗏목을 버렸어야 했다. 대선이라는 강을 건널 때는 그 뗏목이 너무나 절실하고 고마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강을 건넌 다음에는 날렵한 말로 갈아탔어야 했다. 준마를 구하지 못했다면 뗏목을 해체해서 수레라도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고집스레 뗏목을 끌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끌고 가는 이나 끌려가는 이나 다같이 힘겹고 고달픈 역정이다. 험한 산길의 돌부리에 차이고 웅덩이에 빠지면서 뗏목을 붙잡아 맨 새끼줄은 해지고 목재는 깨졌다. 산을 오르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뗏목을 끌고가느라 진만 빠졌다. 깨진 통나무 몇 개를 갈아끼웠지만 뗏목이 마차로 바뀌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길은 더욱 가파르고 험난해졌다. 다 망가진 뗏목을 끌고 첩첩산중의 험로를 어찌 가려는지.

이제 기대를 접자. 정부가 무엇을 해줄 것이란, 뭔가를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기대하지 않으면 절망할 일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 미련 두지 말고 기대를 싹 거두자. 그리고 각자가 스스로 살 길을 찾자. 앞으로 물가가 다락같이 올라도 정부를 탓할 게 없다. 각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기름값을 깎아달라고, 장사가 안 된다고, 입시 공부가 싫다고 열받아서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나설 것도 없다. 그래 봐야 어차피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니 말이다. 방법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이 정부가 언제 뗏목으로는 산길을 오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마차로 갈아탈 결심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아직까지는 굳세게 뗏목을 끌고 있으니 더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나 언제까지나 뗏목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뗏목이 산산이 부서지고 나면 끌고 가려야 끌고 갈 뗏목이 없어질 터이니 말이다. 그건 의지나 고집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때 가면 원치 않아도 할 수 없이 뗏목을 버리고 누군가 마차 탄 이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명박 대통령이 가는 길은 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김종수 논설위원
2008.07.16 00:49 입력
 












이렇게 해서라도 제발 똑똑해져라.
니들 수준 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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