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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방

by 한가해 2009. 8. 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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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anatos님 블로그>
















어린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방학이라 알바 뛸 시간이 생긴거다. 그나 그건 내 생각이고,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해결하기 위해 유흥비 마련차 알바를 뛴다는 게 그들의 지론이었다. 이것저것 힘쓰는 알바에 비해 온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은 피가 철철 끓어넘치는 이 친구들을 녹초로 만드는데 몇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럴 수밖에, 일을 해봤을리 없는 친구들에게 많은 걸 기대한다는 건 어부지리(?).ㅋㅋ

공정은 상자에 넣는 일과 1차 포장된 걸 2차 컨베이어에 옮기는 일, 2차 포장된 걸 박스포장하는 일로, 친구들을 적절히 투입하고 오전 동안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다양한 스타일을 파악하고 투입시킨 게 아니기에 관찰은 필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정별 부적응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다 들어줄 수는 없기에 몇의 의견을 간추려 오후 작업 전 작업을 재배치했다.

사람이라는 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다보니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폄하가 장난이 아니다. 아니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난이도와 수고를 제일로 치게 된다. 참 간사하고 멍청한 노릇이다. 제아무리 설명한다 한들 그들의 귀에 들어올리는 만무. 막무가내로 상대의 일을 깎아내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조악한 망말들이 오고 갔다. 참 아이들과 같이 일하는 데 이리 힘들 줄이야.

어린 친구들은 짧은 시간에 빨리 적응했고 익히는 속도 역시 아주머니들에 비해 빛의 속도로 앞서 나갔다. 앞서 나가는 실력만큼 자만과 오만 역시 앞질러 나가기 시작. 농땡이를 피거나 시간을 어기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쉬는 시간 눕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쉬는 시간에 쉬고 일하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야 애들아. 학교에서나 쉬는 시간 놀고 공부시간에 화장실 가는 거지. ㅡ,.ㅡ;;" 아무리 타일러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짧은 시간 빨리 배우는 것에 반해 지켜야 할 룰에 대한 통제가 많이 어려운 게 이들의 특징이다. 다음날 작업 시작 전 이탈자가 나왔고, 기다리다 작업시간은 지연됐으며 결국엔 오질 않아 한 명 분의 일을 채우느라 버거웠다. 안 나온 이유는 올리브유 알러지 때문에 아팠단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잤단다. 이 증언은 다음날 억지로 불러낸 이 친구의 말이다. '믿어줘야지.' 친구들이랑 아주머니들께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한 후 다시 작업에 배치시켰다. 잘못은 뉘우치면 되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걸 경험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 적도 없었다고 하고.

근데 믿는 도끼에 제대로 찍혔다. 오후 박스포장 자리에서 자꾸 일의 진행속도가 앞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거였다. 가보니 한 친구는 보이지 않았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 나름 의리를 지킨 건지 아님 관심이 없었던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후자 같다.) 박스실 옆 자재창고 문을 여니 그 안에서 자고 있는 그 친구를 발견했다. 어의상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나 그냥 돌려보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 후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또 한 명이 이탈했고, 이탈 이유는 할머니 생신이라는 것이었고, 그 말을 들은 나머지는 황당해 했다. 전날에 얘기할 수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날 집에서 출발을 못하면 못한다고 먼저 친구들에게 전화도 줄 수 있는 일인데...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지만 약속을 신중히 여기지 않는 행동들에 실망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고등학생. 어리다고 하기엔 덩치는 나보다 컸으며, 멍청하다고 하기엔 영악했으며, 똑똑하다고 하기엔 개념이 너무 없었던 이 어린 친구 몇을 보면서 같이 보낸 일주일이 이 친구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그간의 일주일을 돌아보니 그닥 자신이 없다. 컨베이어 작업의 특성 상 작업하는 인간은 기계이거나 그보다 못한 부품으로 전락하는 노예화가 이 어린 친구들에게 노동에 대한 왜곡된 정의를 체화시키지나 않았나 걱정이다. 얘들아 노동을 노래이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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