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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09. 2. 1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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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아무도 철거용역을 말릴수 없다

2009 02/17   위클리경향 812호

주거침입·협박·방화 등 ‘거침없는 폭력’… 불법 근절 정부 관리 감독 강화해야

철거용역 회사 직원들이 새총을 이용해 구슬을 철거민에게 쏘고 있다. <김경만 감독 제공>

용산 참사 이전부터 철거용역 회사는 존재했다.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는 말처럼 철거용역의 폭력은 당해본 사람만이 실감하는 무서움 그 자체다. 철거용역은 폭력, 주거침입, 방화, 위협·협박, 성추행 등 철거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동을 거침없이 해왔다. 철거민들의 입에서 ‘깡패’라는 말이 술술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철거용역 회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들어 서울시가 소위 합동재개발사업(재개발사업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재개발구역 안 주택 및 토지 소유자들이 결성한 조합이 시행하고, 주택건설업체가 재원을 조달해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전환하면서다. 상업적인 재개발사업이 시작된 것.

세종대 김수현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가 쓴 <서울시 철거민운동사 연구>에 따르면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정부는 재개발사업에 따른 분쟁은 민간끼리 해결해야 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재개발사업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철거 용역회사가 생겼다. 철거민운동은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됐고, 재개발조합은 정부의 개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철거 시한을 지키기 위해 조합은 용역회사에 의뢰했고 용역회사는 폭력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문 용역 등장
김 교수는 “1970년대 초반에도 인부를 써 철거했지만, 1980년대처럼 철거반대 운동이 강경하지는 않았다”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전문적인 철거용역 회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89년 7월 서울시가 “택지개발사업 지구 내 불법 무허가 시설물의 신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단속반을 편성함과 함께 용역회사에 의뢰해 경비업무를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은 용역회사의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계기였다.

2003년 5월 안양시 동안구청에서 민간 위탁한 용업업체 직원 4명 중 한 명이 단속 과정에서 성기를 노출해 노점상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노점상총연합 제공>
철거용역 회사의 시초는 1986년 12월 설립된 (주)입산개발로 알려져 있다. (주)입산은 태옥건설, 신한환경 등 3개 용역사를 보유했다. 입산개발은 사당동, 돈암동, 동소문동의 철거권을 따내면서 대표적인 철거용역 회사로 성장했다. 입산의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이사와 별도로 실질적 사주는 당시 여당의 유명 정치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또한 서초구 우면지구를 담당한 무창인력과 범양용역, 따이한용역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성업’했던 철거용역 회사다.

이후 입산에서 일했던 이들이 나와 1990년 (주)적준개발용역을 만들면서 철거용역 회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적준개발용역은 적준토건, 적준환경, 적준산업 등의 철거 관련 회사를 설립했다. 적준은 거산, 인덕 등과 각축을 벌이다 1994년부터 재개발 현장을 거의 독점했다고 전해진다. 적준의 성공으로 이후 협승주택, 동무건설, 일진공영 등의 철거용역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적준의 실세는 조직폭력배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적준이 얼마나 악명을 떨쳤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펴낸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철거범죄 보고서>(1998년 11월)다. 이 보고서는 도시빈민여성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권운동사랑방 등 12개 업체가 참여해 작성했고, 철거용역 회사의 폭력을 정리한 최초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하나로 뭉쳐서 철거용역 회사의 보고서를 만들 정도로 적준이 철거현장에서 보여준 폭력은 충격적이었다.

‘실행조’ 몰려다니며 철거민 위협
적준의 사원은 10여 명 안팎이지만, 상시 동원 능력은 100여 명이다. 그리고 300여 명 정도 서로 인맥을 통해 일당으로 고용했다. 철거현장에 배치될 때는 50~60명을 선봉대와 기습조로 편성했다. 철거민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는 ‘실행조’로 불린 전문 철거깡패였다. 세입자들의 저항이 거셀 때 투입되는데, 30~50명씩 몰려다니며 폭행했다고 전해진다. 적준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폭력 47건, 주거침입 55건, 성폭행·성추행 16건, 재산손괴 5건, 위협·협박 10건, 어린이 인권유린 9건, 살인 2건 등을 저질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심지어 1995년 4월 봉천6동 철거현장에서는 당시 철거대책위 위원장이었던 주부 전모씨를 집단 폭행 후 팬티를 벗기는 등 성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1997년 9월부터 2000년까지 적준이 철거수주를 한 지역은 서울 철거지역 34개 중에서 17개로 50%를 차지했다.

위_용산 철거민 농성 현장 옆 건물 옥상에서 물대포를 쏘는 철거용역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경찰의 진압 작전에 용역이 동원된 것이 확인되면서 경찰 관계자들의 형사처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문석 기자> 아래_2003년 11월 서울시에서 노점 단속을 명분으로 용역업체 직원 2000여 명을 고용했는데, 이중 4분의 1 정도가 노숙인이어서 많은 논란을 빚었다. <전국노점상총연합 제공>
입산부터 적준까지 대표적인 철거용역회사의 특징은 계열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똑같은 철거용역 회사였다. 문어발식으로 회사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전국노점상총연합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철거용역이 민간회사나 공공기관의 공개입찰에 참여할 때 회사를 여러 개 내세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비슷한 이름의 회사를 몇 개씩 만든다”면서 “그리고 철거용역 회사는 폭력을 쓰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비난을 피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회사를 등록할 때 내세운 사장들은 흔히 이름만 사장인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철거현장에서 철거용역 회사가 폭력이나 인권유린 등의 문제가 생기면 실질적인 사주는 처벌을 받지 않는 셈이다.

용산 참사를 계기로 철거용역 회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철거민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유명한 철거용역 회사는 10개 안팎이다. 대표적으로 ▲참마루건설 ▲삼오진건설 ▲다원환경 ▲다원이앤씨 ▲다원이앤아이 ▲호람건설 ▲비조이엔지 등을 꼽는다. 전국빈민연합 심호섭 의장은 “철거용역 회사들이 많지만, 현장에서는 자기들 용어로 부르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기 힘들다”면서 “회사 이름이 자주 바뀌는 것도 현황 파악을 하기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심 의장은 또 “이중 한 업체는 삼성건을 대부분 수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들은 왕십리, 용산 등 대규모 재개발현장에 나타나기 때문에 철거민에게도 익숙하다. 이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으로 뷴류되는 업체로 철거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유명 철거회사는 10개 안팎
참마루건설은 2004년 4월 설립됐고, 자본금 10억 원 규모의 회사다.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 토공, 부동산 컨설팅업 및 시설경비 및 신변보호 등 업무를 맡고 있다. 박모씨와 정모씨가 대표이사로 등록되어 있다. 삼오진건설은 2005년 7월 설립됐고, 자본금 10억 원 규모의 회사다. 이곳 역시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과 시설경비와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김모씨고, 조모씨, 정모씨, 제모씨, 김모씨 등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이번 용산4구역의 조합과 계약한 호람건설은 1996년 설립된 곳으로 자본금 10억 원 규모의 회사다. 이곳 역시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대표이사에는 마모씨가 등재되어 있다. 비조이엔지는 2003년 설립된 곳으로 대표이사 김모씨와 신모 이사, 이모 이사 등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곳 역시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곳이 다원환경, 다원이앤씨, 다원이앤아이다. 회사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과거 적준으로 이름을 날렸던 다원건설과 관계가 있는 곳으로 보인다.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다원건설의 이사 4명을 고발했는데, 4명의 이사 중 박모 이사의 이름을 세 업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 회사의 이사가 다른 회사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것도 세 업체가 모두 같은 줄기의 회사로 볼 수 있는 증거다. 다원건설의 박모 이사는 2006년 3월 설립된 다원이앤아이의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또한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최모씨는 2001년 설립된 다원이앤씨의 대표이사다. 또한 1997년 7월 설립된 다원환경의 대표이사는 정모씨지만, 다원이앤아이의 대표이사인 박모씨, 다원이앤씨의 대표이사 최모씨가 다원환경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것.

결국 1990년대 적준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원환경의 경우 철거용역이 아닌 돈이 된다는 폐기물처리용역을 맡고 있다. 다원환경은 다원이앤씨, 삼오진건설, 삼성물산 등 회사의 수주를 받아 폐기물처리 용역을 하고 있다. 철거현장에서 나온 폐기물 처리도 큰돈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참마루건설부터 비조이엔지까지, 이 회사들이 대표적인 철거용역 회사라는 증거는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시공능력평가 조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시공능력평가액를 통해서 2007년 공사실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철거용역 회사는 2007년 공사실적액이 수억 원에 그친 반면 이들 업체의 경우 수십 억 원에서 수백 억 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건축, 재개발현장에서 이들 업체의 수주가 많다는 증거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씨는 “폭력을 쓰는 대표적인 철거용역 회사는 20여개 정도로 과거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계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과거나 지금이나 철거용역 회사의 외양은 바뀌었지만, 폭력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일부 업체 공사실적 수백억 원
전노련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이번 용산 참사를 통해서 확인했지만, 철거용역 회사도 문제지만 경비업법도 문제가 많다”면서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 상해, 협박 등의 행위에 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처벌 규정도 대단히 약해서 경비업체의 불법행위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처장은 또 “어찌보면 조직폭력배의 활약이 경비업법으로 포장되어 사회적 폭력을 용인하는 상황으로 나가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철거용역 회사는 대체로 시한을 정해놓고 철거를 진행한다. 철거 시한이 늦어지면 계약에 의해 늦어진 만큼 받을 돈이 깍이기 때문에, 폭력을 써서라도 시한을 맞추는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얼마 전 <재개발, 재건축 탈법 실태 대책 보고서>를 내면서 “주민의 시각에 맞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책으로 ▲추진위원과 조합 임원의 자격요건에 거주 및 1가구 1주택 소유자 요건 추가 ▲추진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뇌물범죄 및 몰수특례법 적용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의 중앙관리 및 감독체제 구축 등을 제안했다. 철거용역 회사의 불법과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감독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철거현장을 직접 본 다큐감독의 목소리

위_H빔을 장착한 굴착기가 철거민이 있는 망루를 때리고 있다. 아래_철거용역 회사 직원들이 망루에 있는 철거민을 조롱하고 있다. <김경만 감독 제공>
2000년 이후에도 철거현장에는 폭력이 난무한다. 철거민들은 여전히 철거용역 회사의 폭력에 치를 떨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철거현장의 폭력은 여러 언론매체의 기사와 함께 2편의 다큐멘터리로 기록됐다. 1999년 9월부터 2000년 3월까지 상암동 철거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람은 철거되지 않는다>(박홍렬 감독, 2002),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철거용역 회사와 철거민들의 싸움이 진행됐던 고양시 풍동택지개발지구의 싸움을 담은 다큐멘터리 <골리앗의 구조>(김경만 감독, 2005)이다.

박홍렬 감독은 촬영 중 철거용역과 싸움을 벌이다 돌에 맞아서 6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박 감독은 “촬영을 6개월 정도 했는데, 풍동 현장을 촬영하러 들어간 날 철거용역이 들이닥쳤다”면서 “당시 철거민들 대부분이 끌려나갔고, 대학생과 몇명의 철거민이 철거용역과 싸웠다”고 전했다. 또한 “상황이 상황인만큼 나도 싸움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과거의 폭력이 현재도 계속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골리앗의 구조>에는 강제철거 현장의 난리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김 감독과 함께 작업을 했던 다른 감독이 풍동 철대위의 망루에서 생활을 했는데, 철거용역 회사의 강제철거 장면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 H빔이 설치된 굴착기가 망루를 때리고, 새총으로 쇠구슬을 쏘아대는 철거용역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망루에서 이에 맞서 화염병 등을 던지며 맞서는 철거민의 모습도 담겨 있다.

김경만 감독은 필자에게 다큐멘터리에는 들어가지 않은 장면을 공개했다. 철거민의 가족이 망루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전해주고 돌아가다 철거용역에게 붙잡힌 것. 철거용역은 그 사람을 집단 폭행하면서 망루에 있는 철거민들에게 내려오라고 비아냥 대는 충격적인 상황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망루에 있는 철거민들은 눈 앞에서 자신의 가족이 집단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

당시 풍동 철대위 채모 위원장은 “철거용역들은 화염병, 새총, 개조된 포크레인, 최루가스 등을 사용하면서 철거민을 괴롭혔다”면서 “강제 철거가 있을 때 소방차가 들어와도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것이지, 불이 난 곳을 끄는 것이 아니었다”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철거용역을 경찰에 신고해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풀려난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요즘 경찰의 진압과정에 용역업체가 개입된 것이 문제가 된다는데, 과거부터 그랬다는 여러 증거들이 많이 나와 있다”면서 “그런데 왜 이제야 그게 이슈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수백억 원의 수주실적을 자랑하는 몇몇 메이져 철거용역업체의 인적구성이 참 궁금하다.
조만간 업체에 복귀하게 되면 안면 좀 트고 지냅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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