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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호황의 원천 '고임금', 이코노미인사이트(류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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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11. 3. 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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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호황의 원천 ‘고임금’
[경제사 산책]
[12호] 2011년 03월 01일 (화) 류동민 economyinsight@hani.co.kr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영국에서 간행되는 비주류 사회과학 학술지인 <자본과 계급> 2008년 봄호에 실린 플리트우드(S. Fleetwood)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일화로 시작한다.

“몇 년 전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내가 차 한 잔을 따르고 있을 때, 한 여종업원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내 옆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걸 보았다. 나는 좀 불편한 마음에 농담처럼 우리는 19세기 이후,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진공청소기가 있는 세상으로 옮아왔다고 말했다. 난 그녀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일어서면서 ‘매니저가 진공청소기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손님들을 방해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중얼거렸으나, 실은 이 젊은 여성이 샌드위치를 먹는 내가 진공청소기 소리에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릎 꿇고 테이블 밑을 뒤지고 다닌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신경이 쓰였다….”

이 에피소드에 관해 얼마 동안 생각한 끝에, 내 마음속에는 지극히 불편한 질문이 떠올랐다. 노동자는, 소비자라는 또 다른 자아로서, 그들이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노동자의 낮은 임금과 해로운 작업 조건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이나 태도를 취하는가? 나는 마찬가지로 불편한 대답에 도달했다.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이 글에서 묘사한 2000년대 중반 영국의 상황은 2011년 한국에서도 익숙한 모습이다. 이를테면 인터넷을 달구었던 ‘○○대 패륜녀’같이 청소노동자에게 막말을 퍼붓는 여대생의 모습은 어쩌면 ‘패륜’이라는 봉건시대에 더 어울릴 만한 용어로 단죄할 문제가 아니라, 교육 서비스 소비자가, 넓은 의미에서 그 서비스의 제공자인 노동자에게 취하는 태도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노동자, 소비자라는 또 다른 자아

대형 할인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휴일도 없이 24시간 철야로 일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더욱 싸고 편하게 장을 보려는 소비자 욕구가 분명히 큰 몫을 한다. 상당수 소비자가 계급적으로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임금수준이 낮고 작업조건이 좋지 못한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일수록 역설적으로 24시간 일하는 대형마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얼마 안 되는 소득을 절약해 살림을 꾸려나가려면 한 푼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 사항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왕’(심지어 일본 사람들은 ‘손님은 신’이라고 말한다)이라는 이른바 ‘소비자 주권’은 이제 담론 수준을 넘어 일상을 움직이는 기제가 되었다.

   
지난해 12월, 서울 롯데마트 영등포점에 ‘통큰 치킨’을 사러 온 시민들이 줄을 서있다.
문제의 상황은 노동자 정체성과 소비자 정체성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 때문에 일어난다. 이 충돌은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노동자로서 나는 열악한 작업조건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통받는 대형 할인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마트 안 가기 운동’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가 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 혼자 연대를 시도하는 것은 불합리한 구조는 바꾸지 못한 채, 소비자로서의 합리적 소비와 효용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결과만 가져온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 차원에서 연대를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른 노동자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결국 플리트우드의 논문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런 ‘나’들의 태도와 행동이 모여 집합적으로는 다른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해로운 작업조건을 유발하게 된다.

모든 노동자는 작업장 안에서는 자본에 고용돼 지휘 및 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직접 생산자이지만, 작업장 문을 나서는 순간 매일매일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소비자다.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의 지휘·통제에 맞서 노동시간이 길어지거나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등 작업조건의 악화에 맞서거나 더 많은 임금과 더 안정적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단결해 싸우게 된다. 그러나 소비자로서는 일단 받은 임금으로 가능한 한 값싼 상품을 많이 구입해 노동능력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첫 장에 등장하는 소비자 이론에서 말하는 ‘예산 제약하의 효용 극대화’가 그것이다. 이른바 ‘통큰 치킨’이나 ‘마트 피자’가 중소 자영업자의 밥그릇을 빼앗은 대기업의 횡포라는 도덕적 비난에도 대히트를 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가, 노동자이자 동시에 소비자라는 사실을 경제학이 인식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언제나 주요한 생산비용의 한 부분, 즉 인건비로만 인식됐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기업이 시장에서 소비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구매력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 금액은 처음에는 자본의 투자지출로서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생산은 자본가가 자본을 생산요소에 투자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 상품이 생산되고 그것을 판매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단계에서 임금은 소비재 수요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개별 자본가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본가가 생산을 시작할 때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은 투하자본의 일부분이자 비용이었다. 물론 똑같은 임금을 주더라도 노동시간이나 노동강도 등을 적절히 통제해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하면 된다. 그렇지만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임금을 적게 지급할수록 생산비용은 줄어들기 때문에 이윤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가능하면 임금을 적게 지불하려 한다.

임금과 수요, 자본가의 딜레마

그렇게 해서 생산한 상품을 팔아야 하는 시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상품을 동료 자본가들에게만 팔 수는 없고, 결국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가 사주지 않으면 생산한 상품을 제대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자본가는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사는 노동자에게 충분한 구매력이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개별 자본가의 처지에서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자신은 임금을 적게 지급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하고, 동료 자본가는 임금을 많이 지급함으로써 시장에서 노동자가 충분한 구매력을 갖게 되는 상태일 것이다. 모든 자본가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므로, 서로 눈치만 보면서 임금을 적게 지급하려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자본가 A와 자본가 B가 모두 저임금 전략을 추구하면, 경제 전체적으로는 노동자에 대한 지나친 착취와 더불어 ‘유효수요’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 동시에 자백한 두 명의 용의자가 모두 무거운 죄를 받게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A와 B 중 한 명만 저임금 전략을 추구하고 다른 한 명은 고임금 전략을 선택하면 유효수요는 어느 정도 확보되지만, 그 혜택은 저임금 전략을 추구한 자본가가 더 많이 가져가게 된다. A와 B 모두 고임금 전략을 선택하면, 노동자는 충분한 구매력을 갖게 되므로 최소한 유효수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죄수의 딜레마’ 깬 헨리 포드



 
 
1930년대 미국 포드자동차 공장 모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성립한 이른바 ‘포드주의(Fordism) 축적 체제’는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대량소비의 구매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량생산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 포드주의적 축적 체제의 특징을 죄수의 딜레마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자본가 A와 자본가 B가 동시에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상황, 즉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이 어떻게 인식하든 간에, 헨리 포드의 탁월함은 죄수의 딜레마를 깨고 나간 데 있다. 포드는 자신이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자동차가 더 이상 부자의 사치품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유명한 ‘모델T’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채택한 이른바 ‘5달러’(FDD) 임금정책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시장임금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즉, 동료 자본가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전략은 자동차를 비롯한 내구소비재 시장의 확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윤 실현에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물론 포드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가 가능한 미국의 자동차라는 산업적 특성과 맞아떨어졌고, 나아가 소비자금융 확대라든가 관리통화제도 같은 여러 가지 경제제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포드주의의 성공은 국가가 케인스주의적 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관리하고,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자(勞資)관계나 금융제도 등 다양한 제도 형태가 갖춰짐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여러 가지 제도적 조건하에서 자본은 상품을 대량생산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대량소비하며, 자본의 고임금 지급 전략에 노동자는 높은 생산성으로 화답하는 식의 선순환 구조가 성립했고, 이것이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을 가져온 포드주의의 요체였다.

포드주의의 위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딜레마를 ‘자유로운 시장’ 형성을 통한 ‘만물의 상품화’라는 논리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이를테면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구매력은 정규직 노동자의 소득에서 찾고, 생산비용은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해 절감하는 이중적 구조였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이런 전략의 촉진제이자 결과물이었다. 흔히 말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값싼 제품이 포드주의 시대의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소득을 누리던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이코노미 인사이트> 11호 트렌드 ‘미국인의 차이나드림’ 참조). 이때 자본과 노동의 대립 및 갈등은 종종 노동과 노동의 갈등으로 나타났고,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해 대립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축적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재편돼야 한다는 데, 극히 보수적인 경제학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동의한다. 여기에는 국가권력이나 거시적 경제 개편 등 구조적 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자신이 소비자라는 또 다른 자아로서 스스로에게 맞서는 아이러니가 해소되지 않으면 어떤 진보적·민주적 구조 개혁 의제도 무의미한 주문에 그칠 수 있다. 공공성과 민주주의적 가치 확장과 그 대중적 확산, 이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의제여야 한다.

rieudm@cnu.ac.kr


<출처 : 이코노미 인사이트>







국가의 개입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던 케인즈주의는 무지막지한 자유시장경쟁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에 절단난 상태고,

대량생산은 한정된 자원의 고갈로 지향할 점은 못 되고,

자본의 통제는 이미 국가의 손을 떠난 상태고,

저임금에 허덕이는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불안정노동자는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가 상품을 선호할 터.

고임금의 유효수요 창출만으로는 환경과 생태가 걱정이니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

연대만이 살 길인데, 이게 교육과 언론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어려운 일.

교육과 언론이 중요한 이유다.

의식화, 조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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