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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폐인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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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08. 7. 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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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뭐냐고? 촛불은 [학교]다

[제안] 이 질긴 평화! 촛불학교 영원히 문 닫지 말자
김효진 (zzanga62)
 
   
▲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이 편집하여 352쪽의 올컬러본으로 제작된 이 책은 도서출판 여우와두루미에서 펴냈다.
ⓒ 한글사랑나라사랑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광우병으로 시작된 촛불이 지배세력들의 수많은 문제들을 직시하게 하고, 스스로 참여와 소통의 방법을 깨우치게 했다. 온오프라인에서 전국적으로 펼쳐져 온 '촛불학교'는 그 무엇보다 훌륭한 민주주의의 학교였다는 것을 '촛불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발 빠르게도 엊그제(19일) '아고라 폐인들'에 의해서 광우병 논란에 대한 아고라 누리꾼의 글과 패러디물, 촛불시위 일지, 의의 등을 담은 책인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가 발간되었다. 벌써 반응이 뜨거운 듯한데, 또 한 권의 민주주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하리라 예상된다.


앞으로 어떤 분들이 할지는 모르지만, 2008년 시작된 촛불의 전 과정과 그에 관계된 것을 집대성하여 연구 분석한 책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전 세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지금부터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아 정리하는 팀이 구성되기 바란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광우병 인자는 고기를 싸게 많이 먹으려는 욕망과 싸게 많이 생산하려는 탐욕이 맞물려, 소를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괴물이다. 이런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설사 광우병이 사라질지라도 더 무서운 질병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광우병이 동물복지의 문제라는 것과 현대의 식문화에 대한 뼈저린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하니, 늘 뭔가 빠진 듯하여 갑갑함을 느낀다.


그러나 간혹 이러한 점을 꿰뚫고 주옥같은 글을 써주는 분들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공감을 표시해주는 분들도 있다. 그나마 그런 성찰이 가능하게 한 것은 광우병 사태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작은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의 발행인인 현병호씨의 말에 희망과 아픔을 동시에 느낀다.


"광우병과 조류독감은 어찌 보면 인간이 자신의 탐욕을 깨닫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도록 자연이 배려한 장치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성숙이 이처럼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을 치를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자연을 거스른 인간에게 자연이 돌려주는 선물인 건 분명하다. 인간종이 다른 종을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광우병은 차라리 인간종에게는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하고 자각을 도울 것이다."


앞으로 촛불광장은 '배움'에 초점 맞춰야


   
▲ 동네 사람들과 함께 촛불집회 참석 행진하다 말고, '명박산성'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 지난 6월 10일 동네에서 모여 함께 광화문으로 갔다.
ⓒ 김성섭
명박산성


우리는 그간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 누비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배우며 많은 공부를 했다. 마치 거대한 동아리에 소속된 느낌이다. 국가라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공동체지만, 다수 국민들에게 지금과 같은 연대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함께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각자의 창의력을 동원해 다양한 모색을 하고 배움과 도움을 주고받아 온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더 적극적으로 촛불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부터 주말이나 집중일에는 중앙으로 총집결하고, 나머지 평일에는 방송사 등에 하루나 이틀씩 돌아가면서 참여하면 어떨까. 더불어 1~2주에 하루쯤은 평일에 지역에서 촛불을 켜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라 일과 마을 일을 얘기해보자.


다시 주말에는 동네에서 이웃들을 만나 중앙으로 향하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촛불이 더욱 일상화되면 매주 참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적절이 개인 일과 조화하면서도, 지속성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배운 여자'라는 말이 유행이다. 가방끈이 길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는 20~30대 여성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란다. 한마디로 '온오프라인의 촛불학교에서 배워서 실천하는 여자'라는 뜻일 게다.


그처럼 앞으로의 촛불광장은 그 무엇보다 '배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유발언, 토론, 공연, 영화, 강연 등 여러 가지 방법의 배움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하거나, 또는 즉흥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다. 만약 언론사 수호와 같이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는, 그 장소에 모여 촛불학교를 운영하면 된다.


등록금이 필요 없는 촛불대학교는 어떨까?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대학, 멋지지 않은가. 밤늦도록 학원으로 뺑뺑이 돌다 대학 가서는 대기업의 정규직 노예가 되기 위해 취직준비에만 몰두하는 대학생보다 훨씬 유익한 것을 배우는 촛불 대학생이 되는 거다. 등록금도 없고 누구라도 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 6월 23일, 진보신당 이덕우 공동대표가 광화문에 있었는데, 자정 무렵 횡단보도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경찰들이 무리하게 막아섰다. 변호사인 이 대표는 교보빌딩 앞 비각에 올라 확성기를 잡고 경찰측에 강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를 듣고 있던 한 시민이 '경찰직무집행법'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자, 이 대표는 즉석 강의를 펼쳤다. 집회시위와 현장체포에 관한 법률 문제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내가 듣기에도 참 재미있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프리카TV에서 칼라TV가 전송하는 이 대표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채팅하던 젊은이들도 '오늘 많이 배웠다'며 뿌듯해했다. 강의가 마무리 될 즈음 경찰은 뒤로 돌아 그대로 도망가(?) 버렸는데, 이른바 '횡단보도 대첩'이라 불리는, 즐거운 에피소드 중 하나다. (‘횡단보도 대첩’ 동영상 바로가기)


   
▲ 진보신당 이덕우 대표의 "경찰직무집행법" 즉석강연 지난 6월 23일, 횡단보도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경찰들이 무리하게 막아섰다. 이에 이덕우 변호사는 교보빌딩 앞 비각에 올라 확성기를 잡고 강력하게 항의한 데 이어, 경찰들과 시민들 앞에서 즉석강연을 하며 열변을 토했다. 칼라TV 동영상에서 캡쳐.
ⓒ 칼라TV
이덕우 변호사

촛불들에 관심 많은 주제로 재밌게 강연해주실 분들은 많다.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을 잘 이용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의 '물 타기'에 흔들리는 동요층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촛불들이 잘 배워서 주변에 알려야 한다. 배울 것은 많다. 예를 들어 보자.


- 광우병의 위험성과 추가협상의 진실

- 미국 공장식축산의 사육장과 도살장의 끔찍한 실태

- 국내 축산의 문제와 나아갈 방향

- 종말로 치닫는 육식문명과 석유문명에 대한 성찰

- 식품 소비자로서의 성찰 과제

- 이 대통령이 반성한다면서, 안 한다면서 매일 하고 있는 것들

- 의료민영화와 개인 의료법인과의 관계

- 촛불들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과 한미FTA의 관계

- 촛불행동과 관련한 법적 상식들

- KBS 등 방송사 내부 동향

- 부모와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교육현장에 대한 객관적 이해

- 입담 좋은 백기완 선생님 말씀도 기력 되실 때 한번이라도 더 듣고,

- 반생명적이고 반생태적인 문명을 이끄는 신자유주의와 우리들 삶의 관계

- 살림의 정치, 경제,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법


그 외에도 흥미로운 강연 주제들이 참 많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주대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 강의와 토론마당은 어떠한가.


배워서 남 주자


   
▲ "우린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6월 30일의 시국미사에서 이와 같이 말하며, 행진대열을 남대문으로 인도했다.
ⓒ 권우성
김인국 신부


평소에는 온라인 운동과 주변부 운동을 하고, 왜곡언론에 대항하는 신문 만들기를 하면 어떨까? 다음 아고라에서도 '촛불신문'이 나온다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대안언론일 것이라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A4 크기로 편집하여 누구나 쉽게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신문이다. 인터넷에 'A4신문'의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여 올리고 의견을 나누고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는 본부를 두면 좋겠다. 그럴 경우 누구나 기자나 편집자가 될 수 있으면서도, 일정하게 내용을 검증하거나 매일 배포하기에 적합한 신문들을 선정하는 위원회가 구성되면 좋겠다. 신문에는 "주변 사람들과 돌려봅시다"라는 문구를 꼭 넣는다.


이런 대안신문을 각자 몇 십부 내지 몇 백부씩 뽑아 가방에 챙겨 넣자.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에서 또 직장에서, 식당에서도 나눠줄 수 있다. 촛불행진 시에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나눠주자. 상가의 주인과 손님, 택시 기사에게도 줄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입니다."


시국미사에서 김인국 신부가 했던 이 말은 적절한 시점에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지 않게 하고 우리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을 가급적 많이 늘리는 것이다. 우리의 힘의 크기는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우리와 뜻을 함께 하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번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행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동대문을 지나 제기동 방면으로, 다음엔 남대문을 지나 숙대 방향으로, 매번 차량을 막지 말고 두 줄로 인도로 행진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홍보'에 초점을 맞춰 충돌은 최대한 피할 필요도 있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에서만 모일 것이 아니라, 구를 옮겨가며 집결할 수도 있다. 행진하다가 잠깐씩 모두 멈춰서 다리도 쉬고 그 거리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갖자. 각자가 그 곳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고 질문에도 답을 해주자.


비폭력 시위만으로 충분한 이유


   
▲ 이런 행위는 폭력인가? 아닌가? 6월 11일 새벽, 시민들이 왜곡보도에 항의하는 의미로 조선일보사 앞을 스티커와 쓰레기로 막아 놓았다.
ⓒ 권우성
조선일보사


폭력, 비폭력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사실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조선일보사는 태극기를 걸 자격이 없고, 오히려 태극기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으며, 너희의 상징은 쓰레기가 걸맞다는 뜻으로 쓰레기봉지로 바꿔 매다는 것이 폭력이라면, 차량통행을 막고 시위를 하는 것도 폭력이 아닐까?


신체에 대한 위해뿐 아니라, 환경 관점에서 물질적 파괴도 폭력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석유로 만드는 초, 나무로 만드는 종이컵을 하염없이 쓰는 것도 자연에 대한 폭력은 아닐까.(실내에서 전기를 쓰는 것과 촛불집회에 나와서 촛불을 켜는 것을 환경적으로 비교해보고도 싶다.)


전경차에 스티커 붙이고 낙서하여 화학물질인 페인트 써서 도장 다시 하게 하는 문제는 어떤가. 또 코리아나 호텔의 유리회전문 파손 행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코리아나 호텔의 문이 실수로 깨졌거나, 프락치가 깼거나, 또는 프락치에 의해 유도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냥 촛불시민의 순수하고 자발적 행위라고 가정하자.) 아무래도 어떤 행위가 폭력이고 지양해야 할 폭력인지는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보수언론이 온갖 거짓말을 동원하여 부자들에게 유리하고 서민들의 목을 조르는 정책을 펴게 하는 것은 더 큰 폭력이다. 보수언론들은 심지어 남몰래 반대자를 고문하고 죽이는 정권도 옹호해왔다. 보수언론이라는 거대 권력,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촛불들이 폭도라고 전하는 그들에 대항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80년대 역시 언론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왜곡했으며, 특히나 유신시대에서 군부정권으로 이어져온 엄혹한 언론통제 상황이었다. 그러할 때에 소수의 운동권으로서 짱돌과 화염병의 사용은 조금이나마 시위 시간을 끌어 사회문제를 알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2008년, 부당하게 청와대로의 행진을 가로막는 전경버스 끌어내기는 폭력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저항운동이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통틀어 일부 시민의 폭력, 즉 전경 신체에 가한 폭력은 극히 드물었고, 오히려 시민들이 너무 비폭력적으로 오래 유지하니, 경찰들이 시민들을 자극하고 폭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역사상 유래 없이 다양한 방법의 폭력을 사용했다고 본다.


정부와 경찰은 수많은 시민들이 그토록 여유만만하게 오랫동안 별 폭력이나 난동도 부리지 않고 시위를 지속하는 것에 오히려 두렵고 불안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프락치를 동원해 폭력을 유도하거나 함정을 만들어 진압작전을 펼친 증거도 속속 시민들에게 포착되어 동영상으로 퍼지고 있다. '촛불이 폭력이면 조중동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는 <한겨레21>의 광고 카피에 공감이 간다.


- 아, 이 질긴 평화 -

 

촛불이 폭력이면 우리 엄마는 엔젤리나 졸리입니다.

촛불이 폭력이면 우리 사무실은 아마겟돈 전쟁터입니다.

촛불이 폭력이면 조중동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입니다.

촛불이 폭력이면 우리 편집장은 지존파입니다.

그런데도 폭력이라 하셨고, 거리를 피칠갑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화염병 대신 십자가와 목탁이 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질긴 평화 보셨습니까, 저는 난생처음입니다.

 

<한겨레21> 7월10일자 718호의 광고 카피


   
▲ 각자가 배운 것을 창의적으로 표현하여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것은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 지난 6월 10일 밤, 종로 10차선 찻길 위에 분필로 낙서를 했다. '좋은 말'이라고 공감해주고, 사진 찍는 분들도 많았다. 사진이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 촛불시민
도로 낙서


촛불학교, 영원히 문 닫지 말자


그런데 2008년의 촛불처럼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오래 지속된 적은 없다. 더구나 인터넷을 통해 무수한 시민들이 시위자들의 말을 들어주고 현장을 감시하고 신속하게 지원하고 소통하고 있다. 80년대에 비해, 그간 노동자나 농민의 시위에 비해, 이토록 외롭지 않은 시위를 상상이나 했던가.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로 비폭력 시위만으로 충분하다. 폭력은 우리를 탄압하려는 세력을 도와주게 될 가능성만 커질 것이다. 프락치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렇다고 너무 몸을 사려, 조선일보사 국기 게양대에 검은 비닐봉지를 달아매고 전경차에 스티커 붙이는 것까지 심하게 왈가왈부해서 창발적 시도에 힘을 빼지는 말자.


그리고 대국민 홍보에 주력해야 한다. 정부와 조중동이 촛불로부터 국민들을 분리해내려는 것을 막고, 공감세력을 더욱 넓혀가야 하는 것이다. 촛불은 학교이어야 한다.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가는 것이 곧 자연스런 조직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미 촛불은 일상적 운동의 요소를 내포하며 진화하고 있다. 촛불학교, 영원히 문 닫지 말자.

<출처 : 액션대로망>


















이런 게 바로 발빠른 행보 아니겠는가.
아니 집회 출췍하기도 버거울텐데 언제 이렇게 책을 다 펴냈데?
감탄과 감복만 있을 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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