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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후 등록금 상환제 보단 반값 등록금에 후한 점수를~!(프레시안, "김종인 발탁 실패, 노무현 정권 운명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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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10. 5. 1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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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문가 인터뷰]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많은 이들이 '부동산 불패신화' 특히 '아파트 불패신화'를 믿지만, 서울시 아파트의 실질가치가 반토막난 일은 분명 있었다. 90년대 노태우 정권이 대대적인 공급정책과 분양가 상한제를 함께 실시하면서 서울 아파트의 PIR(가계 평균 연소득 대비 평균주택가격 비율)은 딱 '반토막'이 났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런 전례를 이유로 '분양가 상한제'의 효과를 강조한다.

현재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올초부터 시작된 아파트값 하락은 이명박 정부가 2009년 9월 금융규제를 강화한 상태에서 분양가 상한제 효과를 갖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고 홍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분양가 상한제의 효과를 불신하던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전혀 의도하지 않은 효과였을지도 모르지만.

홍 연구위원은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투기와 '전쟁'까지 선포했지만, 아파트값 급등을 막지 못했던 것도 분양가 상한제를 이미 투기 광풍이 휩쓸고 난 뒤인 2006년 11월에야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분양가 상한제로 노태우 정권에서 부동산 투기를 잡았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초대 경제부총리로 영입하려던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노무현 정권과 부동산 투기 세력과 '전쟁'의 승패가 달라졌을 거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분양가 상한제 효과를 갖는 보금자리주택이라는 '폭탄'을 시장에 던진 이명박 정부에서 부동산시장이 다시 상승세를 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홍 연구위원은 전망했다. 하지만 일본식 경착륙 가능성에 대해선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다. 홍 연구위원은 "서울의 민간소유 아파트 수가 130만 호인 상황에서 소득 상위 10% 130만 가구의 평균 연소득이 1억500만 원이나 된다. 거품이 꺼지더라도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평균 25% 이상 빠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은 6일 오후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 편집자

ⓒ프레시안(김봉규)

2009년 9월 금융규제, 2010년 봄 하락의 단초

프레시안 : 최근 이명박 정부의 서민주택정책인 보금자리주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보금자리주택이 강남 집값을 잡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보금자리주택이 최근 부동산가 하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홍헌호 : 보금자리주택이 강남집값 하락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진보진영 내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실련의 김헌동 단장 같은 분은 그 영향이 결정적이라고 보는 반면, 그 영향이 별로 크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양쪽 모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영향이 별로 크지 않다는 사람들은 거품이 많기 때문에 하락한 것이지, 보금자리 주택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막연히 거품이 크기 때문에 하락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유사한 크기의 부동산 거품이 2007년, 2008년, 2009년에도 존재했는데, 왜 2010년 봄에 와서야 하락하기 시작했을까.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그림을 하나 보여드리겠다. 이 그림을 보면 왜 부동산 가격이 2010년 봄에 하락하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다.

[2006년 1월~2010년 3월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단위 : 건)

▲(원자료 출처) : 국토해양부, 홍헌호 가공

이 그림을 보면 서울시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던 2006년 하반기에 거래량도 폭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래가 늘면 가격이 오르고, 거래가 줄면 가격이 내린다는 것은 모든 자산시장에 적용되는 철칙(鐵則)이다.

흥미로운 것은 2007년이다. 연평균 거래량이 6~7000건에 머무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6년 말 뒤늦게 분양가상한제를 부활했고, 2007년 초부터 금융기관들이 비교적 강하게 대출억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2008년 초에는 이명박 정부의 부유층 중심정책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어 아파트 거래량이 많이 늘었다. 그 해 봄 거래량은 1만 4000건에 육박했다. 2008년 하반기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지 않았다면 이 시기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불안해졌을 것이다.

지난 해 수치들도 흥미롭다. 혹자는 지난 해 연초부터 부동산 시장에 붕괴 징후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의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지난해 2월 경기선행지수 중 재고지수가 바닥을 치면서 경기회복 징후가 나타나자 투기꾼들의 발 빠른 행보가 시작되었고, 그 여파가 거래량 급증과 가격불안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지난 해 4월 서울아파트 거래량이 1만 건을 돌파하며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자 7월과 8월을 전후하여 출구전략 논의가 일었다. 7월 하순으로 기억한다. KBS에서 연락이 왔다. 출구전략 토론회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토론회에서 금리인상 시기는 다소 늦추더라도 LTV, DTI규제 등 금융규제를 강화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부동산 시장불안도 해소하고 통화량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나처럼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2개월 뒤 정부는 금융규제를 강화했다. 그 여파로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은 9월 1만 1000건에서 11월 6000건으로 크게 떨어졌다. 그들로서도 금융규제 이외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9월의 금융규제 강화 조치는 불씨를 키워가던 부동산 투기열풍을 잠재우는데 기여했다.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까.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공급방안도 구체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의외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부유층 친화적인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보금자리, MB정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거품 붕괴' 도화선 역할

프레시안 : '위험한 도박'이라면 보금자리주택 공급으로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나타났다는 얘기인가?

ⓒ프레시안(김봉규)
홍헌호
: 그렇다.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가져오는 가격인하효과는 분양가 상한제 효과와 동일한 것으로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컸다. 진보진영에서도 분양가 상한제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수진영에서는 오죽하겠나. 현 정부의 성격상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거품붕괴의 도화선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혈세를 투입해서 20대, 30대 등 무주택 청년층의 표를 얻어내는 꿈에만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금융규제와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겹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제2차 보금자리주택 가격을 높이고, 공급량을 대폭 줄인 것은 이런 공포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60만 호의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공염불로 끝날 전망이다. 얼마 전 정부는 2010년도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면서 보금자리주택을 18만 호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보금자리 주택은 7만7000호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이전 정부부터 일정하게 공급해 오던 국민임대주택, 영구임대주택 등이었다.

보금자리 주택단지와 보금자리 주택은 구별되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보금자리주택이란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분양되는 분양주택을 말한다. 보금자리 주택단지에 18만 호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그 대부분이 기존에 건설해 오던 국민임대주택, 영구임대주택으로 채워진다면, 3년내 보금자리 주택 60만 호 공급이라는 약속은 공염불로 끝날 수밖에 없다.

'아파트 불패신화'? 90년대 이미 서울시 아파트 '반토막' 났었다

프레시안 :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과 분양가 상한제가 가져오는 가격인하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크다고 했는데 과거에도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불패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홍헌호 : 보수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에서도 지금까지 아파트는 패배한 적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1990년대 서울시 아파트 PIR(Price to Income Ratio, 가계 평균 연소득 대비 평균주택가격 비율)이 반토막 난 적이 있다. 즉 91년과 97년 사이 가계소득지수가 100에서 197로 상승할 때 서울시 아파트가격지수는 100에서 103으로 상승하는데 그쳤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중용했던 노태우 정부가 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되 분양가상한제라는 안전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91년과 97년 사이 가계소득이 2배 오를 때 아파트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불만은 건설사에서 터져 나왔다. 건설사 부도율이 90년 1%에서 95년 4%까지 급등했다. 4% 부도율은 2009년 건설사 부도율 0.44%의 9배에 달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김영삼 정부는 95년 12월 지방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분양가 자율화에 나서게 된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초에 김종인 전 수석을 경제부총리로 발탁하려 했는데 성사가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홍헌호 : 나도 그렇게 들었다. 서로 뭔가 불일치하는 면이 있어서 성사가 안됐다고 한다. 어쨌든 그의 발탁 실패가 노무현 정부의 운명을 갈랐다고 본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에 진보적인 측근들과 보수적인 관료들을 균형 있게 포진시키려 했다 한다. 그 생각이 너무 안이했다. 노대통령 스스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권력과 로비능력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보수적인 관료들의 자료 축적량 또한 진보적인 측근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계적인 균형이라니. 더군다나 대통령이 권력을 다 내주겠다니. 김종인 전 수석의 경제부총리 발탁 실패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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