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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이 10년이라니.

그림방

by 한가해 2009. 5. 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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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출처 : 김정현 fitness 노래교실, 널 사랑해. 김정은>








후배들의 교육을 위해 처음 하는 것들이 아마 신문스크랩일 것이다. 나 역시 노땅 선배들의 귀염(?) 속에서 열심히 스크랩을 했었더랬다.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던 새내기 때에는 매일 먼저 올라와 창문을 열고 전날의 막걸리 냄새를 빼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를 청소한 후 소파에 몸을 눕히고 다리는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상태로 그 날 배달되어 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펼쳐 스크랩할 사건을 찾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침잠 많기로 소문난 나에게도 그런 때도 있었다. 뭐 정작 군대에선 늦잠 잔다고 쿠사리 먹었지만서도.

스크랩은 보통 점심 지나 회의 전에 끝마치던가, 아니면 다음날 하는 식으로 진행했었다. 안 본 사람도 더러 있기에. 새학기엔 대부분의 단위에서 이 방식으로 새내기들을 물가로 인도했던 거 같다. 주간지나 월간지는 학습 후에나 보기 시작했었더랬다. 여튼 사건사고 위주의 스크랩도 있었지만 독특하게 한 단위에서는 박재동 화백의 한겨레그림판을 스크랩해 클리어 파일철이나 앨범으로 몇 개는 소장(?)하고 있었다. 관람료까지는 아니어도 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타 단위에서 놀러와 만지는 걸 꽤 싫어했었더랬다. 치사빤쮸. 퉤퉤퉤!

책이라고는 만화책 밖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신문을 펴면 글로 된 기사보다는 만화나 그날의 운세 정도를 보게 마련이다.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밴 습관일 것이다. 나 역시 헤드라인 후 그날의 사설보다는 박재동 만화부터 섭렵했었으니, 문민정부 시절 한겨레그림판의 역작은 누가 뭐래도 "깨달았도다~!"시리즈. 조계종 폭력사건을 소재로 YS의 뻔뻔함과 무식함을 통렬히 보여준 그림판이야말로 아직도 내가 생각하는 역대 수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복학 후 다시 본 한겨레는 칼러가 차지하는 면적만 넓어졌을 뿐, 그닥 기사의 내용은 엉성했었고, 비판적 지지로 당선시킨 DJ의 그늘 안에서 안주하는 듯했다. 화를 낼 정도의 배신감 같은 건 없었다. '세상이 그런거지'하는 허탈함이 좀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한겨레는 단위마다 배달되어 왔고, 가는 족족 눈에 밟히는 것이 한겨레였다. 이젠 내가 노땅이 되었고 그 당시의 노땅들처럼 애들이랑 이야기꽃을 피워 막강 조직력에 회반죽 역할로 일조할 때. 그때 한겨레 속지로 딸려온 광고지 내에 홍승우 화백의 비빔툰이 있었다. 홍승우. 하이텔 통신의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했던 홍승우, 아마 맞을 거다. 통신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기에 만화보다는 영화에 더 많이 가지 않았나 싶다. 여튼 홍승우의 비빔툰이 주 5번 연재됐고 그게 하루 쉬는 화요일인가 목요일은 왜그리 삶의 낙이 없는지, 평생 일만 해온 사람이 한 순간 할 일이 없어진 거마냥 패닉상태에 빠지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근데 이게 벌써 10년이란다. 뭐 주 5회 연재했던 걸 1회로 줄여 큰 부담은 없었겠지만 한 가족의 일상사를 지켜보는 재미는 여전한 듯하다. 오랜동안 봐와서 그런지 정보통 가족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란 게 생겼다고나 할까.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 아마 더 관심있게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하지 않아도 이 애정이 없어질 거 같진 않다. 다음에 있는 비빔툰 카페에 안 가본지 몇 해지만, 가서 축전이라도 남겨야겠다. ^^ 20년, 30년 쭈욱 비빔툰 연재해달라는 흰소리는 아니어도 10년 간 곁을 지켜줘 감사하는 말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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