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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원무과의 냉대, 이해는 한다만.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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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09. 6. 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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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OO병원이라며 연락이 왔다. 사촌형이 일터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튀어나오는 자전거를 피하다 쓰러져 다쳤다는 것이다. 뒤에 트럭이 오고 있었다는데 하마터면 큰 사고로 번질 뻔했다. 기중 천만다행이었다.

사촌형은 나이 마흔 중반에 홀어머니(내겐 고모)를 모시고 농사를 짓고 사는 마을 청년이다. 캐릭터는 "소싯적에 한 '가다'했잖여."를 입에 달고 살고, 아무나 보고 스스럼 없이 농담을 던지는 좀 '헤픈', 외모도 양촌리 응삼이를 닮은 순박한 청년이다. 왕래가 없이 산지 십수년 됐지만, 왕왕 만나면 반가이 맞아주는 사이되겠다.  

근데, 병원에선 횡설수설하는-보다는 병원비 납부를 미루는-환자를 대신해 보호자를 찾았고, 보호자로 외삼촌(내겐 아버지) 성함과 전화번호를 알려줬나보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말은, 지금도 눈 바로 아랫 부위가 찢어지고 얼굴부위에 타박상을 입어 검사가 필요하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근데 막무가내로 검사를 거부하고 있기에 보호자가 부득이 병원에 와주셨음 하는 전화였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모임에 나가셨고 내가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병원에 도착해 원무과장을 면담하니 담당선생님 말씀이, CT촬용이나 심전도 검사를 받아야 할 듯한데 환자분이 막무가내로 집에 간다고 하니 보호자 되시는 분께서 담당의사를 만나보고 동의서-퇴원하는 걸 보호자로서 동의하겠다는 동의서-에 서명날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침 9시 병원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담당의사의 진료는 만원이었고, 간혹 내시경에, 꼬매는 수술도 하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마냥 의사방문 앞에서 기다렸다. 한 시간이 흘렀고, 원무과장의 애원에 담당의사와의 면담에 들어갔다. 면담 내용은 아까 들었던, 눈 아랫 부분이 찢어져 지방이 보이고 있다. 이 상태로 방치하게 되면 눈을 뜨고 감는데 장애가 생길 수 있으니, 입원해 염증 치료하면서 환부를 꼬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데 그걸 환자가 지금 거부하고 있으니 보호자께서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환자를 모시고 가던지, 아님 병원수속을 밟아줄 터이니 입원하고 환부를 꼬매고 퇴원하자,신다.

외견상 심각한 상태는 아니나, 나중에 장애가 있을지 모를 상태로 방치하느니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고 항생제 투여도 해야한다니 입원도 고려해보자, 사촌형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다시 담당의사에게 원무과장이랑 찾아가 그럼 입원을 하겠다 말씀드리니, 원무과장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담당의사에게 눈짓, 손짓으로 이 환자의 입원은 안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환자를 먼저 검사실에 보내 수액을 맞도록 보내고, 원무과장과 단독면담(?)을 했다. 아니 담당의가 입원을 시키라고 하지 않느냐, 당신이 뭔데 입원을 하라마라 말을 섞느냐, 한마디 퍼부었다. 대학병원 가봐도, 내일은 일요일이라 이 정도 상처로는 입원받아주지도 않는다고 담당의가 말하는데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고 퍼부을 대로 퍼부었다. 원무과장 말이, 봐서 알겠지만 환자분께서 통제에 따라주지도 않고 횡설수설할 뿐 아니라, 미납요금도 결제가 안된 상황에서 또 환자를 받기란 좀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해는 하고도 남았다. 시골 병원 원무과가 도시 병원의 그 살풍경한 원무과만 할까.

에휴... 문제는 돈이었다. 사람의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건강을 챙길 병원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원무과와는 완전 별개의 것이었다. 원무과장이 보낸 사인은 그러니까, 이 환자 불량선인이니까 입원시키지 마라, 미납요금 당신이 책임질거냐,하는 사인이었다.

속이 타지만 어쩌랴, 당장 입원부터 시켜야 하는데. 미납부분 완납해드릴테니 검사 받게 하고 입원시키자, 근데 환자분이 오늘 집에 조부 기일이라니 내일 와서 입원시키겠다 말하니 내일은 원무과가 쉬는 날이라 입원수속을 밟을 수 없단다. 그러니 오늘 입원수속 밟고 외출증 끊고 나갔다가 내일 오란다. 어쩔 수 없이 병원 입원수속 밟고 미납요금 결제하고 병실 확인 후 사촌형 모시고 나왔다.

어디든 일방적인 정보취급소에 가게 되면 별일도 아닌 일로 불쾌하게 만드는 권위와 맞닥뜨리게 된다. 경찰서나 각 관공서들이 그 예다. 하물며 인명을 다루는 병원이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을 당할 때에는 정보소외감과 동시에 관계자의 공공의식 부실함에 열이 받친다. 환자나 학생 머릿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영리성에 치가 떨린다. 더더구나 없이 산다고 막대하는 속물들이나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전문직종자들을 만나게 되면 인간에 대한 회의감 마저 든다.

보증인으로 서명은 안했지만 보호자로 연락처를 남겨놓고 온지라 방금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오늘 오기로 했던 환자분이 감감무소식이라고. ㅡ,.ㅡ;; 부랴부랴 사촌형 댁에 전화를 하니 느즈막히 고모께서 받으신다. 일 나갔단다. 하루하루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 꼴이 뭐냐고 낙심해 하던 사촌형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짐작했어야 됐는데, 확인했어야 됐는데... 입원수속 밟아놓고 일 나갈 정도로 어리숙한 걸 알면서도 난 무늬만 보호자인 셈이었다.

저녁은 넘어야 들어온다는 말씀에, 전화달라는 메모만 남긴 채 끊었다. 괜시리 속이 휑하다. 농사지어 빚만 남는 현실이 얄궂고 농번기에도 여기저기 잡부로 바쁜 형의 고단함이 눈물겹다. 병원에 데려가도 갑갑하다며 뛰쳐나올 공산이 80%는 넘을 성 싶은데 이 일을 어쩌누, 간병인이라도 옆에 세워야하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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