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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별 헤는 봄, 박민규, 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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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해 2015. 4. 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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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덮은 자도, 묻은 자도, 잊어버린 자도 공범임을… 나는 생각한다”

국화꽃처럼 쌓인 하루하루가 304명의 희생자 수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길고 잔인한 1년이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광화문을 지키고 있다. 오랜 단식과 혹독한 겨울을 거치면서도 그들은 끝내 몇 개의 천막이 전부인 그 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떠난 아이들의 부모들은 지상에서 또 단단히, 이렇듯 서로를 결박한 채 한 배를 타고 있다. 며칠 전엔 삭발식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들과 함께 울었고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상황은 점점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접점도 해결점도 보이지 않는다. 정보를 얻는 경로에 따라, 혹은 저마다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여론도 갈가리 찢어진 지 오래이다. 언론이 참 수고가 많았다. 몇몇 종편들의 노고가 특히 그러했다.

국가가 왜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에 아직 정부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진실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있고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대로는 진상 조사를 할 수 없다며 정부의 시행령안을 받은 특조위원장은 참아온 울분을 터트렸다. 특별법 마련을 위해 끌어온 노력의 결과가 이것이라 생각하면 허무하다 못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도대체 왜? 라는 메아리의 답은 끝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간 이 참사를 단순 해상교통사고라고 규정해온 정부의 기조를 생각하면 더더욱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이 상태로 우리는 1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고의 원인 파악과 구조당국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온갖 루머와 논란과 대립과 감정소모와 비방과 고소와 눈물과 설전 속에 또 한번 세월호를 수장시켰다. 그렇게 1년이 갔다. 700만에 가까운 국민의 서명도 숱한 단체들의 성명서도 정부는 외면했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세월호 가족 숙소 울타리에 내걸린 노란 깃발이 갈가리 찢긴 채 바닷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온 국민적 바람을 담아 내걸린 깃발이다. 낡고 찢겨 몰골이 흉해진 깃발은 지난 1년간 대참사의 진상규명 및 세월호 인양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과 실종자 가족들의 멍든 가슴을 대변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모든 고통과 혼란의 원인은 하나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이다. 단 하나의 열쇠이자 너무나 당연하며 우선되어야 할 해결책을 정부는 피하고 있다. 도대체 왜?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다. 1주기란 타이틀에 부담을 느꼈는지 느닷없이 정부는 ‘돈’을 들고 나왔다. 보상금의 성질을 살펴보니 받으면 입을 다물어야 할 조건이 붙은 돈이었다. 정말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혈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책정한 보상금인지 나는 묻고 싶다. 누구도 답변을 못할 것이다. 또, 해서는 안될 답변일 것이다. 금액의 액수를 크게 키워 언론이 또 앞장을 섰다.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드라인만으로 정보를 취한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른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가족들의 배후에 종북세력이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들려온다. 빨갱이들은 죽여야 하며 남한에서 활동하는 간첩이 몇 만명에 이른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당신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활동하는 간첩이 몇 만명에 이르는데 간첩을 또 조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참사를 이겨낸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며 말 없이 고통을 이겨내는 성숙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9·11 테러 당시 자국의 국민을 구조하다 희생된 소방관들의 수가 343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고 싶다.

똑같이 구조에 실패한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 사고를 예로 든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단언컨대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상황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에 회의장에 나타나 알프스에 사람들이 떨어졌다는데 찾기가 그렇게 힘드나요? 같은 대처를 하지 않았고, 관련 공항의 관제탑이 제출한 통신·항로기록에 편집이나 누락된 구간이 있을 리 만무하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구조현장을 차단하고 구조경험이 전무한 민간업체에 일을 맡길 리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독일 정보국이 평소 여객기 운영을 관리하고 이런저런 사항들을 꼼꼼히 지적해온 문서 파일이 나올 리도 없을 거며, 보상금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조건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상을 최우선으로 규명한다. 내 가족이 어떻게, 왜 죽어야 했는지를 아는 일이야말로 유가족이 비로소 가슴에 희생자를 묻을 수 있는 인류, 인간의 공통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1주기를 맞이하는 마음이 그래서 한없이 참담하다. 살릴 수 있었던 304명의 목숨을 넋놓고 수장시킨 정부가, 1년이 되도록 진상 규명조차 하지 않는 정부가, 겨우 들고 나온 것이 돈이라는 사실에, 아니 정확히는 돈을 간판으로 한 언론플레이란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부를 향해 묻고 싶다. 당신들 대체 뭐하는 인간들인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덮고, 묻고, 잊음으로써 현대사를 건너온 민족이다. 나는 정부의 대처가 이 오랜 습관에서 비롯된 적폐일 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또 이 문제를 덮으려 한다. 묻으려 하고,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적당히 덮고, 묻고, 시간을 끄는 정부와 여전히 잊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국민들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단언컨대 이 땅에 미래는 없다.

진상을 규명하자는 외침이 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며, 세월호가 언제 정권의 발목을 잡았단 말인지 알 수 없다. 손을 뿌리치고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간 것은 다름 아닌 정부였다. 팬티 차림의 선장처럼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정치적 피난부터 한 것이 누구였는가, 묻고 싶다. 대통령에게 고한다. 당신은 정치적 수반으로서가 아니라 행정적 수반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말이 주가 되어선 안된다. 안행부이건 중대본이건 재난 컨트롤 타워는 어디라는 말이 주가 되어야 하며, 그 부서는 이 참사의 책임을 반드시 져야만 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심지어 시간이 흐른 후 책임자들은 영전을 했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영전을 하는 경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이거나, 세월호 참사가 단순 해상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추모 공간으로 남은 교실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은 거대한 추모 공간이다. 책상 위는 아이 잃은 부모와 친구들이 놓고 간 꽃다발로 가득 찼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지난해 겨울 2학년 2반 교실 한쪽에 먼저 간 친구들의 사진을 모아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만들었다.(오른쪽 사진) 2학년 7반 교실 벽면에는 ‘수도권 4년제 대학 안내지도’가 나붙었다. 2016년 수능을 함께 본 뒤 대학생활을 함께했으면 하는 ‘이루지 못한 꿈’이 담겨 있다. 7반 34명 중 올해 수능을 치르는 학생은 1명뿐이다.(왼쪽)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참사 직후 여당의 최고위원이 내뱉은 느닷없는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종북세력이 이를 계기로 정부 전복을 꾀할지 모르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리본을 달고 줄지어 서명을 받는 국민들과 프레임부터 짜고 보는 당신들 사이엔 애초부터 접점이 있을 수 없었다. 묻겠는데 단순 해상교통사고의 수습에 이념과 정치적 프레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들에게 국민은 무엇인가. 또 당신들에게 이 국가는 무엇인가. 나는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내가 품게 된 화두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였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특히 국가가 행했어야 할 보상과 배상에 관해 추적해 보았고 이는 자연스레 유가족의 역사라는 또 다른 지형도를 그리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다. 캘로 부대에서 천안함 사건 때의 금양호 유가족까지... 적어도 유가족의 역사만으로 따져본다면 이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란 생각을 도저히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예비 검속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말해 뭐할 거며 국민방위군 사건에서 숱한 군대 내 의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덮고, 묻고, 잊어버린 역사는 너무나 많고 참담하다.

7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나는 생각한다. 덮은 자도, 묻은 자도, 또 잊어버린 자들도 다 같은 공범임을... 나는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또 언제까지 덮고, 묻고, 잊으려 애쓸 것인가. ‘우라까이’와 ‘기리까이’(미안하지만 이보다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로 이어갈 국가의 미래에 과연 무엇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다시 돌아온 4월의 봄 앞에서 나는 숙연해진다.

지난 1년 우리가 얻은 역사의 진척이 있다면 광화문의 유가족들일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과 수모와 회유와 압박을 온몸으로 견뎠으며, 그럼에도 와해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이 봄을 견인했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겨우 돈이나 들고 나오는 당신들의 머리로는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어떤 힘으로도 덮을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고 위대함이다. 밤이 길수록 그들은 빛나고 항로가 없어도 그들은 길을 찾을 것이다.

죽은 아이들은 별이 되었다고 우리는 늘 말해왔다. 날씨 때문인지 혹은 황사 때문인지 한동안 별을 보지 못했다. 흐리고 불투명한 지금의 시계처럼 세월호의 항로는 여전히 캄캄하다.

그래, 1년이 되었구나. 저 희미한, 그러나 세세한 별들을 헤아리며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정말 자랑스러운 부모를 가졌다고... 또 이런 부모들의 밑에서 자랐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지만 봄이다, 그래 4월이다.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다시 하늘을 우러러 저 별들을 헤아려야 할 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이지

잊지 않겠다.
세월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박민규는 누구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아 등단했고, 그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핑퐁>,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상, 이상·이효석·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산문 ‘눈먼 자들의 국가’가 화제가 됐고, 동명의 산문집이 다른 작가들의 글과 묶여 출간됐다.



 

 

<출처 : 경향신문>

 

 

 

 

 

[새해 특별기고] <중앙일보>

 

 

 

 

오랫만에 막혔던 채증이 뚫리는 기분이다.

김훈이 벽두에 중앙일보에 쓴 칼럼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경향신문에 쓴 박민규의 칼럼.

1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는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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