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호황의 원천 ‘고임금’ | ||||||||||||
[경제사 산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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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노동자, 소비자라는 또 다른 자아
모든 노동자는 작업장 안에서는 자본에 고용돼 지휘 및 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직접 생산자이지만, 작업장 문을 나서는 순간 매일매일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소비자다.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의 지휘·통제에 맞서 노동시간이 길어지거나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등 작업조건의 악화에 맞서거나 더 많은 임금과 더 안정적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단결해 싸우게 된다. 그러나 소비자로서는 일단 받은 임금으로 가능한 한 값싼 상품을 많이 구입해 노동능력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첫 장에 등장하는 소비자 이론에서 말하는 ‘예산 제약하의 효용 극대화’가 그것이다. 이른바 ‘통큰 치킨’이나 ‘마트 피자’가 중소 자영업자의 밥그릇을 빼앗은 대기업의 횡포라는 도덕적 비난에도 대히트를 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가, 노동자이자 동시에 소비자라는 사실을 경제학이 인식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언제나 주요한 생산비용의 한 부분, 즉 인건비로만 인식됐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기업이 시장에서 소비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구매력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 금액은 처음에는 자본의 투자지출로서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생산은 자본가가 자본을 생산요소에 투자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 상품이 생산되고 그것을 판매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단계에서 임금은 소비재 수요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개별 자본가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본가가 생산을 시작할 때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은 투하자본의 일부분이자 비용이었다. 물론 똑같은 임금을 주더라도 노동시간이나 노동강도 등을 적절히 통제해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하면 된다. 그렇지만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임금을 적게 지급할수록 생산비용은 줄어들기 때문에 이윤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가능하면 임금을 적게 지불하려 한다. 임금과 수요, 자본가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깬 헨리 포드
본인이 어떻게 인식하든 간에, 헨리 포드의 탁월함은 죄수의 딜레마를 깨고 나간 데 있다. 포드는 자신이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자동차가 더 이상 부자의 사치품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유명한 ‘모델T’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채택한 이른바 ‘5달러’(FDD) 임금정책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시장임금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즉, 동료 자본가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전략은 자동차를 비롯한 내구소비재 시장의 확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윤 실현에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물론 포드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가 가능한 미국의 자동차라는 산업적 특성과 맞아떨어졌고, 나아가 소비자금융 확대라든가 관리통화제도 같은 여러 가지 경제제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포드주의의 성공은 국가가 케인스주의적 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관리하고,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자(勞資)관계나 금융제도 등 다양한 제도 형태가 갖춰짐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여러 가지 제도적 조건하에서 자본은 상품을 대량생산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대량소비하며, 자본의 고임금 지급 전략에 노동자는 높은 생산성으로 화답하는 식의 선순환 구조가 성립했고, 이것이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을 가져온 포드주의의 요체였다. 포드주의의 위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딜레마를 ‘자유로운 시장’ 형성을 통한 ‘만물의 상품화’라는 논리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이를테면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구매력은 정규직 노동자의 소득에서 찾고, 생산비용은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해 절감하는 이중적 구조였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이런 전략의 촉진제이자 결과물이었다. 흔히 말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값싼 제품이 포드주의 시대의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소득을 누리던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이코노미 인사이트> 11호 트렌드 ‘미국인의 차이나드림’ 참조). 이때 자본과 노동의 대립 및 갈등은 종종 노동과 노동의 갈등으로 나타났고,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해 대립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축적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재편돼야 한다는 데, 극히 보수적인 경제학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동의한다. 여기에는 국가권력이나 거시적 경제 개편 등 구조적 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자신이 소비자라는 또 다른 자아로서 스스로에게 맞서는 아이러니가 해소되지 않으면 어떤 진보적·민주적 구조 개혁 의제도 무의미한 주문에 그칠 수 있다. 공공성과 민주주의적 가치 확장과 그 대중적 확산, 이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의제여야 한다. rieudm@c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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