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감기를 다스리는 일요일로 마음을 잡았다.
2009년은 가끔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처리해야 할 일의 양이 많았고
돈도 못 버는 인간이 바쁘기는 구례에서 둘째라면 확 패버릴 정도로 싸돌아 다녔다.
11월이지만 12월까지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태다.
집에서 짧은 원고 2개만 처리하고 하루 종일 뜨거운 차 마시고 TV보면서 쉬는 일요일로
만드는 것이 나의 2009년 11월 15일 미션이었다.
목표한 그대로 실로 오래간만이자 기적적으로 오전 10시를 살짝 넘겨 눈을 떴다.
9시 넘어서까지 잠을 자는 기능을 상실했는데 이례적이었다.
커피물 올리고 인터넷 켜고 마당에 나와서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다.
전화가 온다. 광주in news 이상현 기자다. 일전에 화엄사 앞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제봅니다."
"제보요?(당신이 기잔데 왜 나한테 제보를 하는게요!)"
"소나무 밀반출건인데 하도 기가 막혀서. 일요일인데 오늘 바쁘세요?"
"예, 두어가지 처리할 일이... (감기라 나가기 싫소. 나무 자르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이욘 -,.-)"
"일단 메일로 사진은 좀 보내드릴께요."
"옙. 죄송함돠."
잠시 후 메일이 왔다. 사진을 확인했다.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키면서 전화를 했다.
"여기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확 추워진 날씬데 감기 다스리기는 틀려버린 것이다.
구례읍 계산리 산 48번지. 독자마을이었다.
도로에서 가까웠다. 바로 아래로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자주 지나치는 길이지만 길 가까이 언덕에 잘 생긴 소나무가 있는 줄은 몰랐다.
현장은 처참했다. 바라보자면 오른쪽 팔은 팔꿈치 부분에서부터 잘려나갔다.
운반을 용이하게 하거나 병이 들었거나 했을 것이다.
뿌리 작업까지 해서 암반에 올려 둔 것을 보니 실어 나가기 직전이었던 모양이다.
별 고민없이 잘랐을 것이다.
나는 별 고민이 많았다. 지리산닷컴은 이른바 언론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는 회원들에게 괜히 작은 돌맹이 하나 아침마다 던져보는
놀이를 하는 사이트일 뿐이다. 구례를 중심으로 한 뉴스 사이트가 아니다.
물리적 좌표가 구례이다보니 구례이야기가 많다. 하동에 사무실이 있었다면 하동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아주 간혹 취재 요청이나 촬영 요청을 받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저희가 언론사가 아니구요...'를 반복한다.
취재는 실질적으로 완료되어 있었다.
도착했을 때에도 이상현 기자는 계속 관련된 사람들과 통화중이었다.
그의 취재노트를 그대로 옮겨온다. 이야기는 이렇다.
계산리 산 48번지는 용방 두동 이씨 문중山이다. 48번지의 소유주가 문중인지 개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추가적인 취재를 하지 않았다. 할 생각도 없었다. 여튼 두동 이씨 문중이건 개인이건 A라 칭하자.
A는 몇 년전에 B에게 이 소나무를 팔았다. B는 다시 2008년 가을에 C에게 이 나무를 일천만 원 주고
되팔았다. 이후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전에도 이 나무를 채취해 가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도 실패했다. 그 시도가 B에 의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C는 11월 14일 토요일을 D-Day로 설정한 모양이다.
장비는 남원의 D라는 사장이 끌고 왔다. 이 모든 과정의 진행에 앞 마을에 사는 E의 소개가 있었던 것 같다.
C는 이 나무를 서울에 내다 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일천만 원을 주고 구입했으니 그것보다는 더 받을 것이다.
사진을 본 주변 사람들 이야기로는 '저 정도 소나무'는 삼천만 원 이상은 분명하다는 말들이었다.
계산리 독자마을 이장님이 이 현장을 처음 방문한 시간은 11월 14일 오전 11시경이다.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그 소나무 있는데' 장비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넣은 모양이다.
포크레인과 인부 3명이었다고 한다.
여튼 오전 11시경에 작업을 시작했다. 이장님은 나무를 반출하지 말 것을 명확히 했다.
반출허가증이 없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작업자들은 산주에게 나무를 산 것인데 뭔 문제도 없다라고
주장을 했다. 산주가 허락하면 문제 없다? 그런가?
큰 나무를 반출하려면 주변은 초토화된다. 원래는 대충 그린 라인의 모습 그대로 완만한 경사지였다.
산림법 제36조 제1항에 의하면 산림안에서 입목의 벌채, 임산물을 채취하고자 하는 경우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지방산림관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관계 행정청의 허가 없이 벌목을 하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러분들의 선산에서 산소 주변을 다듬는다고 마음대로 나무를 베거나 뽑을 수 없다.
위반이 확인되면 같은 법 제74조 제1항에 의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후에 군청 담당과에 확인한 결과 반출 허가가 나와도 마을주민들이 반대하면 반출이
안되는 나무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 과연 이번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나무둘레만 174cm다. 이런 소나무는 흔치 않다.
이 소나무는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만났지만 정말 잘 생긴 소나무다.
수령 100년은 가볍게 넘어설 것이다.
독자마을은, 계산리 전체의 주요한 농가수입은 감이다.
요즘은 감수확이 한창이다. 아주 바쁜 농번기다. 이장님도 농부가 본업이다.
오후 5:30. 이장님은 다시 현장으로 올라갔다. 작업 중단을 오전에 이야기했는데
작업자들은 독자마을 이장님 이야기를 무시껍데기 취급하고 계속 작업을 진행했다.
더 이상 저지가 힘든 것으로 판단한 이장님은 토요일이지만 군청으로 전화를 했다.
산림과 담당자와 연결되었고 담당자가 현장으로 나왔다. 당연히 허가 없는 소나무 반출을
허락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산림법 36조 위반이라고 통보하고 원상복귀를 구두로 지시하고 내려갔다.
이후에 검찰에 고발조취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었는가?
9:30에 이장님이 다시 현장으로 올라갔을 때에는 기중기가 대기 중이었다.
실어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벌금 물 요량하고 나무는 살리러 갖고 갈란게."
이왕 허가 없는 반출은 실패하였다.
그렇다면 벌금 수백만 원 물더라도 일단 가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오간 말들은 아래와 갔다.
"마을이나 이장님한테 섭섭치 않게 할텐게."
"장비 기왕 왔응게 모른채 해주쇼."
"마을사람들 여행이나 가면 지원금을 드리겠다."
이 말도 안되는 풍경이 종료된 것이 거의 10:00경이었다고 한다.
현장 주변에는 이런 농약병들이 굴러다녔다.
나방벌레를 잡는 농약이다. 소나무의 경우 특히 운반 중에 병충해가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운반하기 전에 나무 전체에
일단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은 기본인 모양이다.
예정에 없이 운반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어딘가와 약속이 되어 있을 것이다. 2009년에 구례에서 나무의 불법반출이
적발된 건수는 몇 건이겠는가? 4월에 1건이 전부라고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마을 뒷산에서 나무 나가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라고.
포크레인은 거의 6시간 이상 나무와 나무 주변을 훼손했다.
한번 밀반출된 나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적발되더라도 벌금만 내면 된다.
삼천만 원에 넘기면 삼백만 원 벌금은 '재수없이 뜯긴' 경우로 산수를
정리하면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들키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하루 종일 진행된 것
또한 개인적으로 이해는 되지 않는다.
독자마을 이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무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서울 또는 경기의 어느 공원 또는 개인주택의 정원수로 이틀째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기자의 취재노트를 카피하고 몇 개의 전화번호와 실명을 넘겨 받았다.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밀반출을 시도한, 최종적으로 나무를 구입한 C에게
묻게될 것이다. 전화가 온다. 조금 전에 통화를 했던 남원의 장비업자 D다.
이 기자에게 지금 어디냐는 질문을 한 듯 하다. 만나자는 이야기다. 왜?
나는 수첩에 담긴 몇 명의 이름 중 C의 이름 앞에서 긴가민가 머리를 짜내는
중이었다. 이름이 귀에 익은 것이다.
일단 독자마을로 내려갔다. 점심을 먹고 이장님을 기다렸다.
현장 지번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어제(토요일) 상황을 정리했다.
대부분 이미 이 기자가 취재한 내용 그대로였다.
"이장님, 반출허가증 없이 나무가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계셨어요?"
"나는 그런 거는 모리고 마을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나문게."
만약에 다른 마을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고 목격자가 있어 따졌는데
'내가 돈 주고 산주인에게 샀다 이눔아!' 라고 큰소리치면 대부분은 물러설 것이다.
돌아가기 전에 한번 더 현장 상황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사륜차와 포크레인이 다시 들어와 있다.
원상복구를 하기 위해 들어 온 장비라고 한다.
밀반출을 시도한 C를 만났다. 발생하지 말아야할 상황이,
내가 두어 시간 전부터 '그 사람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고 우려한 바로 그 장면을 맞이했다.
'그 사람'이라 칭하기엔 나로서는 실례인 연배인 지인이다. 당황스러운 장면이다.
C가 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등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남원의 장비사장 D도 등장했다. 물론 나보다 훨씬 연배로 보였다.
C는 '큰사장님'이라고 말했다. 뭔가 '큰것'이 힘이 되는 상황인 모양이다.
C는 환경관련한 단체에서 일을 한 사람이다. 그 선상에서 나와의 이전
만남이 있었다. 나로서도 곤혹스러운 장면이었다.
"죽어가는 나무 이대로 죽이면 안되자녀?
그래서 나무를 살릴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가려고 한 것이여."
"왜 허가를 받지 않으셨어요?"
"나중에 받으려고 했제!"
"주민들이 반대하는데요?"
"신목神木이다 뭐다 그거 다 거짓말이여. 그 사람들 다 돈 달란 소리여!"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사진도 찍지 않았다.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침묵의 시간이 몇십 초 흘렀다. C가 물었다.
"그란디 권씨는 여긴 어떻게 왔나?"
권씨.
그렇다 나는 권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뭐라 부르건 관계없다.
그러나 이 나무는 과연 살 수 있을까?
남원에서 온 장비사장 D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이 기자가 물었다.
"사장님은 벌금 내신 적 있습니까?"
"아 벌금 300만 원도 물어봤제."
"긍께 이런 일은 잘 아시는 분 같은데요?"
"아니여, 허가받았다고 이야기해서 그대로 믿었제."
D는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불러서 장비 가지고 왔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너무 뻔한 그림에 횡설수설한 소리들을 더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기자만 잠시 아래로 불러 '나 더 이상 못 있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D가 나의 정체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아, 기자 아닙니다. 구례사는 사람입니다' 라고. 옆에 있던 C가 보충설명을 짧게 해 주었다.
"이 분은 시인이여."
시인이라. 권씨는 시인이다.
시인이면 시인다운 언어로 상황을 문학적이고 아름답게 정리해야 한다.
A - 어느 문중의 정신 나간 자.
B - 싼값에 나무를 최초 구입하고 손 안대고 코를 푼 자.
C - 지역을 잘 아는, 재수 없이 반출 상황에서 마침표를 찍은 자.
D - 아무리 살펴봐도 개새끼이거나 잘 봐주면 브로커인 자.
E - 인근에 살면서 제반 흥정에 바람을 잡은 의심이 가는 자.
11월 16일 월요일 아침.
나는 다시 현장으로 갔다. '원상복구' 상황 사진이 필요했다.
어제(일요일) 현장을 빠져 나올 때 그들은 암반 위에 올려진 그대로
흙을 채우고 있었다. 자른 부분이 병이 들지 않도록 '약을 발라야' 한다는
염려를 하면서 바로 흙을 채우고 있었다. 물차가 와서 물을 주었다고 했다.
몇 개의 돌이 둘러 있고 나무는 저렇듯 서 있었다.
바라보자면 오른팔은 무슨 이유에선지 완전히 잘려진 상태였다. 외팔이 소나무다.
그들은 아마도 나무를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원래 나무를 살리기 위해 옮기고자 했다고 하니.
군청 담당 부서와의 통화를 이 기자를 통해서 전해 들었다.
그냥 이렇게 흙만 채우면 되는 것이냐고. 담당자는,
'반출 저지는 저희들 소관이지만 나무를 살리는 것은 소관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저 소나무는 제 스스로 살아야 한다.
지자체별로 둘레 사이즈 1m 이상 되는 소나무를 조사하고 관리한다거나
밀반출 적발시 최고 얼마의 벌금이 아닌 최저 얼마의 벌금이나 실형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둥의 대안에 대해 주절거릴 생각이었으나 이 늦은
시간 나는 별 생각이 없다. 잠도 오지 않는다. 내 정신은 명료하다.
운전 중에 나는 보통 음악을 듣는다. 그것도 볼륨을 한껏 높인다.
통상 시기별로 3장 정도의 앨범을 준비한다. 반복적으로 듣는다.
이 며칠 나의 차에는,
Pink Floyd의 'Pulse', 양희은의 '양희은 35', 바비 킴의 'Love Chapter.1'
앨범이 반복적으로 흐르고 있다.
바비 킴의 앨범 마지막 곡은 '소나무'다.
현장을 빠져 나와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곧이어 '소나무'란 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스스로 '보기보단 감상적인 인간' 이라고 말하자 월인정원은 '감정적인'
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감정적인 동물인 나는 갑자기 오래간만에 신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뭔 개같은 경운가. 마흔일곱 먹은 빡빡이가 섬진강변 도로를 혼자 달리면서 할 짓인가.
며칠 더 지나면 이 글은 쓸 수 없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버 문제도 불안정하고 밀려 있는 일들이 몇 짐이지만 나는 이 글을 끝내야했다.
쓰고 나면 후회할 글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나는 제 각각의 인생살이 사정을 감안하고
이런 저런 뒷이야기를 수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합리적으로 된다.
감정적일 때 휘갈기고 끝을 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