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지리산닷컴>
망자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오면 같이 하자고 분향소를 지나쳤다.
그리곤 가지 않았다. 망자를 볼 낯이 없었다.
자살이었고,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고 처자식을 남겨놓은 놈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술의 힘을 빌어 난장판을 피워볼까 생각했지만 유치했다.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맘 뿐이었는데,
술자리를 냉정하게 털고 일어난 것에 비해 장례식장을 떠나진 못했다.
서너 시간이 지나고 여기저기 추억의 조각들을 꿰맞추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렇게라도 더 부여접고 싶은 거겠지, 생각했다.
술이 얼카해진 몇몇이 몸을 가누지 못한다,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몇몇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생각에 부조금 외의 가욋돈을 모으고 있다.
있는 돈을 탁탁 털어 주곤 밖으로 나왔다.
결국은 망자를 보지 못했다, 화장터 역시 가지 않을 생각이니.
학교 선후배요 회사 동료인 녀석은 이틀 간의 육체봉사로 녹초가 되어 있구,
막판까지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머슥했던지 방안에 들어가 뻗었다.
시간이 되어 망자를 볼 수 있게 되면 그땐 그냥 웃었음 좋겠다.
지금처럼 억지웃음 말구.
이번 장례 역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만 쓸쓸히 남아있다.
'차기 전에 차이자' 속으로 다짐하지만 역시 차이는 건, 남는 건 주체 못할 슬픔이다.
어쩌랴, 악착같이 살아남아 못 살고 간 사람 몫까지 죄값 받아야지, 별 수 있으랴.